쌍쌍이 짝 지은 가마우지는 옛 낚시터를 잃고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01)

2018년 12월 11일(화) 18:14

寶泉灘卽事(보천탄즉사)
점필재 김종직

눈 녹아 물결이 몇 자쯤이 높아졌나
바위가 머리 잠겨 있는 곳 알지 못하고
쌍쌍이 가마우지는 풀 속으로 들어가네.
桃花浪高幾尺許 狠石沒頂不知處
도화랑고기척허 은석몰정부지처
兩兩鸕鶿失舊磯 啣魚却入菰蒲去
양량로자실구기 함어각입고포거

‘보천탄에서’ 2수 중 첫째 수다. 변화되는 경과 정을 가볍게 정리해 본다. 복사꽃이 떨어지고 냇물이 불어 바위가 잠기고 말았다고 해 냇물이 불었다는 상황의 변화 속에 가마우지가 불어난 냇물 때문에 터전을 잃었다.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입에 문 채 풀숲에 들었으니 터전을 잃었다고 삶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음을 강조한다. ‘눈이 녹아 물결이 몇 자쯤이나 높아졌을까, 흰 바위 머리 잠겨 있는 곳 알지 못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쌍쌍이 짝 지은 가마우지는 옛 낚시터를 잃고’(寶泉灘卽事)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세조, 성종 대에 걸쳐 벼슬을 하면서 항상 절의와 의리를 숭상하고 실천했다 한다. 점필재의 정신이 제자들에게까지 전해져 이들 또한 절의를 높이고 의리를 중히 여기는 데 힘쓰면서 가르쳤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눈 녹아 물결이 몇 자쯤 높아졌을까 / 흰 바위 머리 잠겨 있는 곳을 알지 못하네 // 쌍쌍이 짝 지은 가마우지 옛 낚시터를 잃고 / 물고기 입에 물고 물러나 풀 속으로 들어가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보천탄에서 시를 짓다]로 번역된다. 물결 높은 보천탄의 정경을 즉흥적으로 읊었다. 눈이 녹아 불어난 물에 여울의 물결이 드세져 물 가운데 솟았던 바위도 이미 잠기고 보이지 않는다. 그 위를 가마우지의 어지러운 날갯짓을 두고 물에 잠긴 바위를 찾지 못해 저러는 것이라 해, 짐짓 깊은 우의(寓意)에 담겨 있음을 본다.

시인은 눈이 녹아 몇 자쯤 되는지를 자신이 묻고 은근한 대답을 바라면서 잠긴 흰 바위 위치를 알 수 없다는 시상이다. 눈이 녹아서 물결이 몇 자쯤이나 높아졌는가 하면서 흰 바위의 머리가 잠겨서 그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비바람에 복사꽃이 떨어지고 냇물이 불어 솟은 바위가 잠기고 말았다는 시상을 부각시켰다.

화자는 가마우지가 낚시터를 잃고 물고기를 물고 어찌할 줄 모르는 시심을 붙잡는다. 냇물이 불어 옛 터전을 잃었다고 해서 삶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어서 시류에 따라 살 수도 없는 가마우지의 그러한 모습에서 역사를 참으며 살아가는 곧은 정신을 볼 수 있다. 이런 역사를 가리켜 질곡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었을 것이다.

※한자와 어구

桃花: 복사꽃 필 무렵 눈이 녹아서 불어난 물결. 浪高: 물결이 높다. 幾尺許: 몇 자쯤. 狠石: 같은 바위, 즉 흰 바위의 미칭. 沒頂: 머리가 잠기다. 不知處: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다. // 兩兩: 쌍쌍이. 鸕鶿: 가마우지 失舊磯: 옛 낚시터를 잃다. 啣魚: 고기를 물다. 却入: 문득 들다. 菰蒲去: 풀 속으로 들어가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