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일 꿈속에서 주공(周公)을 만나게 된다면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02) |
| 2018년 12월 18일(화) 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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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 윤효손
정승의 단밤 깊어 햇발이 올랐는데
앞에선 명함 종이 피도록 만지면서
꿈속에 밥을 토하고 주공 만남 말하리.
相國酣眠日正高 門前刺紙已生毛
상국감면일정고 문전자지이생모
夢中若見周公聖 須問當年吐握勞
몽중약견주공성 수문당년토악로
시 한 편으로 정승의 사위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우화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을 꾸몄다. 아버지가 정승을 만나러 간 이야기며 그래서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 와서 그런 사실을 명함에 써뒀던 일 등은 어쩌면 정승의 마음을 깨우치는 동기가 됐다. 다행히 이를 제목으로 붙이지 못한 사실도 지적해 본다. ‘정승은 단잠 깊어 해가 높다랗게 올랐는데, 문 앞에선 명함 종이를 피도록 만지고만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만일 꿈속에서 주공(周公)을 만나게 된다면’(無題)으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추계(楸溪) 윤효손(尹孝孫·1431-1503)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453년(단종 1) 생원으로서 급제해 승문원 부정자, 전농주부를 지냈다. 호조 참의, 형조 참판, 대사헌, 형조 판서 등을 역임했고 ‘경국대전오례의주’, ‘성종실록’을 수찬했던 인물이다. 시호는 문효(文孝)를 받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정승은 단잠 깊어 해가 높게 올랐는데 / 문 앞에선 명함 종이 피도록 만지고 있네 // 만일 꿈속에 주공을 만나게만 됐다면 / 그 당시 밥을 토하고 머리 쥔 채 손님 만나던 일 말했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제목을 붙이지 못함]으로 번역된다. 시와 관련된 지봉유설 [혼취(昏娶)]에 나오는 일화 한 편이 있다. ‘윤효손 아비가 의정부 녹사가 돼 이른 새벽에 상공의 집에 가서 명함을 내놓고 뵙기를 청했다가 거절당하고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 말을 들은 효손은 아비 명함 끝에 위 시문을 써 뒀다.’
위와 같은 사연을 담았기에 시인은 정승의 단잠과 사연을 담은 편지가 펴지도록 만졌다는 시상을 일으켰다. 정승은 단잠이 깊어 해가 높다랗게 올랐는데, 문 앞에선 명함 종이가 피도록 만지고만 있었다. 가상한 현실 앞에 세태를 돌아본다.
화자는 주공에 얽힌 고사 하나를 인용하며 정승에게 부탁하려는 뜻을 담았다. 만일 꿈속에 주공을 만난다면, 밥을 토하고 머리 쥔 채 손님 만나던 일을 말하겠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그 아비는 그 정승을 만나러 가는데 부지중 어제 가지고 갔던 명함을 그대로 내놓았다. 명함을 들여다본 상공은 자초지종을 물어 사실을 안 후 효손을 불러 크게 칭찬했다. 상공은 마침내 그 딸을 효손에게 시집보내고, 효손은 과거에 급제해 판서에 이르렀다는 고사 같은 이야기다.
※한자와 어구
相國: 정승. 酣眠: 낮잠이 깊다. 日正高: 해가 높다랗게 올랐다. 門前: 문 앞. 刺紙: 명함 종이. 已生毛: 이미 펴지게 했다, // 夢中: 꿈속에서. 꿈 가운데. 若見: 만약 -보다. 周公聖: 주공이 성인. 須問: 모름지기 묻다. 當年: 당년에 금방. 吐: 토하다. 握勞: 수중의 수고로움.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