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의 역사 동화] 35,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이성계를 만나다

2018년 12월 19일(수) 19:18

/그림:선성경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청승맞게 내리는 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빈 들판을 달리는 그의 울분과 복잡한 심정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습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세상이다. 갈아엎자. 갈아엎어야 돼.’

함길도로 가는 길은 이전의 나주의 귀양길보다 더욱 을씨년스럽고 황량해 보였습니다.

인기척은 있으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고 어쩌다 어린 아이가 보이면 그 부모 된 듯한 이들이 얼른 나꾸어 채가는 그런 모습들도 종종 보였습니다.

‘밤이 되어도 밥 짓는 연기가 나지를 않고 불빛조차 없는 이곳이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일까?’

오랜 난리의 생채기와 곡식 한 톨마저 모두 빼앗겨버린 참혹한 현장을 지나면서 정도전은 새삼 사람 사는 세상이 과연 어떤 세상일까를 깊이 생각 했습니다.

‘가슴에 천하를 품었다면 백성을 위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요, 내 백성 등허리와 굶주린 배를 먼저 채워주는 일일 것이다.’

함경도 동북면의 이성계의 군대는 엄정하고 군기가 잘 잡혀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전 성균관 박사 정도전이 왔다고 말해주시오.”

“선생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그때 아직 어릿해 보이나 기골이 장대한 소년이 어디선가 달려와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다섯째 아들 방원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고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공손히 안내하여 이성계의 군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런! 이런! 고려 최고의 학자가 이 누추한 곳에 오셨습니다그려.”

이성계가 정도전의 손을 덥썩 잡았습니다.

“이 분은 고려의 최고 실권자 이인임과 맞서 싸운 분이시다. 잘 모셔라. 무장들은 문인들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정중히 잘 모시고 배워야 한다.”

이성계의 군대는 군율이 삼엄하고 충성심이 대단했습니다. 모든 군사를 가족같이 따뜻이 대하면서도 상벌이 엄격했기 때문에 군사들의 사기도 높았습니다.

“이쪽은 병사를 문초하는 곳이오.”

이성계가 안내하는 곳에는 과연 한 젊은이가 곤장을 맞고 있었습니다.

“어쩐 일로…?”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낙을 겁탈하려다 잡혀온 군졸이오.”

이성계는 약한 부녀자를 괴롭히는 군졸들을 가장 엄히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장군께서는 훌륭하십니다. 마땅히 힘없는 약한 부녀자들을 나라가 보호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성군이 되실 분의 크신 덕을 보옵니다.”

“과찬이오. 허허허.”

‘군대를 이렇게 이끌면 나라도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군대를 잘 훈련시키고 있는데 감탄을 했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리고 또 날이 갈수록 이성계의 인품이 참으로 덕스럽고 훌륭하다는데 안도했습니다. 고려의 그 어떤 명망가보다도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계는 역시 친동기처럼 정도전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또한 정도전이 고려최고의 학자임을 높이 사주었습니다.

“지필묵을 학자님의 방에 끊이지 말고 놓아 드리도록 하라.”

부하들 앞에서는 더욱 극진하게 정도전을 대했습니다.

“정공, 혹시 내 군대를 사열하고 싶은 생각이 있소?”

“장군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이성계가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군사를 돌아보게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심지가 깊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도 좋은 군주의 덕목이라 여겼습니다. 이성계의 군대는 정도전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수도 많았고 잘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장군,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 군대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이성계는 정도전의 말의 뜻을 알고나 있다는 듯이 말없이 그저 빙긋이 웃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정도전은 이성계의 깊은 심지에 감탄했습니다. 이성계 또한 정도전의 박학다식한 학문에 다시금 탄복을 했습니다.

“장군께서는 고려를 어찌 보십니까?”

정도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성계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의 눈이 전에 없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