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의 역사 동화] 36,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천하를 담을 수만 있다면

2018년 12월 20일(목) 18:28

/그림:선성경

“어찌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게요?”

이성계의 눈에서도 정도전의 깊은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듯 푸른 서슬이 뿜어졌습니다.

“저는 장군이 어떤 그릇인지 알고 싶습니다.”

“하하하하…, 장부로 태어나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무엇을 못 담겠소이까?”

“천하도 담을 수 있겠습니까?”

정도전의 물음에 이성계의 눈에서 불꽃이 확~ 일어났습니다.

“담아야만 한다면 담겠소이다.”

곁에 있던 아들 이방원이 황급히 일어나 조용히 주변을 살피고 오는 것을 보면서 정도전은 이방원 또한 아직 어리지만 대단한 그릇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성계는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고려가 혼돈에 휩싸이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자 부패한 권세가를 갈아치워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도전의 말을 듣자 천둥번개처럼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일은 대사라 10년이 걸릴 지 20년이 걸릴 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제가 장군의 가슴에 천하를 담아 드리고자 합니다.”

“보잘 것 없는 무장을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아닙니다. 장군께서는 그동안 제가 보아온 고려의 어떤 장수보다 훌륭하십니다. 능히 천하를 호령하시고도 남음이 있는 덕과 모든 것을 갖추신 분입니다.”

“공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소.”

깊이 머리를 조아리는 아버지 이성계를 바라보며 이방원도 공손히 무릎을 끓었습니다.

아득한 세월에 한그루의 소나무

몇 만 겁의 청산에서 자랐도다.

잘 있다가 다른 해에 서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인간세상 굽어보고 큰 발자취를 남기리.

“‘소나무에 제하다’라는 시입니다.”

정도전은 함주에서 이성계와 이방원을 만난 후에 그들이 깊은 산림에 묻힌 인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인간세상을 굽어보겠다는 것은 천하에 군림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입니다.

‘한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쓴 것이다.’

정도전이 술에 취하면 입버릇처럼 한말입니다. 이는 한고조 유방이 뛰어나서 책사인 장량을 수하에 거느린 것이 아니라 장량이 현명하여 유방을 선택했다는 말로 이성계가 정도전을 등용한 것이 아니라 정도전이 이성계를 발탁했다는 깊은 뜻이 있는 말입니다.

“정공을 스승으로 모셔라.”

이성계는 아들 방원에게 정도전에게 많은 것을 배우라고 일렀습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이 나라가 얼마나 계속 되리라고 생각 하시는지요?”

“방원이는 매사에 참으로 거침이 없는 성품이구나.”

“방원이 너는 내가 경험한 그 누구보다도 여러모로 큰 재목이 될 자질을 갖추었다.”

“과찬이십니다. 스승님!”

이성계는 학문보다는 무예에만 관심을 쏟던 아들 방원이 정도전의 가르침을 받고나서부터 늘 책을 보는 것을 보고 너무나 흡족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아들 방원의 무예는 이곳에서는 가장 뛰어나오. 그러나 훌륭한 스승이 없어 늘 학문의 얕음이 걱정이었는데 정공을 모시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오.”

“이 은행나무 앞에서 맺은 두 사람의 형제의 정과 사제의 정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그 은행나무 두 그루는 ‘소나무에 제하다’라는 정도전의 시에 감명을 받은 이성계가 일부러 명나라를 드나드는 상인에게 부탁해 구한 것이었습니다. 아직은 작은 묘목이지만 귀한 인연을 담은 나무이기에 자신의 집무실 앞에 심고 더욱 애지중지 키워온 것이었습니다.

“정공께서 비록 내 곁을 떠나도 천년을 산다는 이 은행나무를 보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겠소.”

이성계는 정도전이 다녀간 후 해마다 정도전의 집으로 쌀과 피륙을 보내어 아직은 벼슬이 없어 가난하기만 한 정도전이 생계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