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슬피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04)

2019년 01월 02일(수) 18:06

除夕感吟(제석감음)
강정일당

아무 할 일 없이 좋은 시절 보내고
내일에 아침이면 내 나이 50인데
한밤중 마음 닦으며 내 여생 보내리다.
無爲虛送好光陰 五十一年明日是
무위허송호광음 오십일년명일시
中宵悲歎將何益 且向餘年修厥己
중소비탄장하익 차향여년수궐기

섣달 그믐날을 제석(除夕)이라고 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며 회한이 젖는다. 열심히 잘 하리라는 초하룻날의 기대와 다짐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허탈한 한 해였다는 깊은 상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열심히 잘 한 것만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못한 허탈한 심정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생각해 보면 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내일 아침이면 내 나이 50이 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밤에 슬피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除夕感吟)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강정일당(姜靜一堂·1772-1832)으로 조선 후기 여류시인이자 성리학자다. 결혼한 지 3년이 흐른 뒤에야 시집으로 들어가는 풍습을 따랐다. 항상 남편과 학문적 자세를 가다듬는 편지를 나눴는데, 이를 보면 한 남자의 아내라기보다는 학덕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여성의 본보기라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이 좋은 시절 다 보내고 / 내일 아침이면 내 나이 오십이네 // 한밤에 슬피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마음 차분하게 닦으면서 내 여생 보내려 한다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섣달 그믐날 밤에 시 한 수를 읊다]로 번역된다. 강정일당이 남긴 잡서 ‘사기록’은 11대 시할아버지로부터 시아버지까지 좋아하였던 음식을 적었다. 정일당은 시어머니 지일당 전씨와 시로써 대화를 주고받은 일화도 알려진다. 분묘는 남편 윤광연과 합장돼 있는데 묘비 하나 없이 전해오던 것을 경기도 성남시가 그 효성을 높이 칭하고 있다.

시인은 한 해 동안 하는 일도 없이 보내고 하룻저녁만 자고 일어나면 나이 50이 된다고 생각하면 50 줄은 어감이 주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점을 보인다. 한 일 없이 꽃다운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내일 아침이면 나이 50이라는 회한에 젖는다. 누구나 선뜻 느끼는 섣달그믐의 소회였을 것이다.

화자는 탄식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깊이 인식했던지, 마음을 닦겠다는 각오로 시상을 문을 닫으려 한다.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밤을 슬프게 탄식한들 무슨 소용인가를 묻고 이제는 마음을 닦으면서 여생을 보내련다는 각오를 나타낸 시상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현대적인 표현은 아마도 자기 위안일 뿐 ‘나이는 속이지 못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시라 한다.

※한자와 어구

無爲: 할 일 없다. 虛送: 허송세월을 보내다. 好光陰: 좋은 시절. 五十一年: 나이 오십일세. 明日是: 내일 아침이면. // 中宵: 깊은 밤. 悲歎: 깊이 탄식하다. 將何益: 장차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且向: 또한 ~을 향하다. 餘年: 여생. 修厥己: 자기를 닦으면서. 몸단장을 잘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