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의 역사 동화] 42,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미륵사의 큰스님

2019년 01월 03일(목) 19:17

/그림:선성경

“철야 마을이 생긴 지 오래지만 이렇게 귀한 분을 모시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이 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철이 많이 나서 철을 가지고 농기구도 만들고 칼도 창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마을 앞 넓은 터에서 병사들이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녁상을 물리고 시를 읊을 때 어느 누구 한 사람 사양하거나 주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읊는 시는 참으로 맑고 그윽하여 깊은 품위를 느끼게 하는 고상한 것이었습니다.

시를 읊는가 했는데 어느새 대화는 고려왕실로 옮겨 갔습니다.

“현재의 공양왕은 미쳤습니다.”

“우왕, 창왕 때도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정도전은 촌로들의 거침없는 비판이 놀라웠고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왕이 왕 답지 아니 하니 백성들이 먼저 아는구나. 군주가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반드시 백성이 군주를 버리게 됨을 이곳에서 배우는 도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말없이 촌로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전에도 시를 벗 삼아 초사에 다니러 와서 밤을 지새 던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단호하고 거침없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나주 분들은 세상일을 논할 때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온유한 것만도 아닌 옳고 그름과 사리가 분명해서 늘 마음으로만 존경했는데 오늘은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들이 폐부를 찌르는 듯합니다.”

정도전의 말에 이 성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왕이 저렇게 백성을 돌보지 않는다면 당연히 폐위 시켜야 합니다.”

단호하고도 분명한 촌로의 말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힘이 있었습니다.

“허허… 오늘은 그저 좋은 술과 안주로 향기로운 시나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만.”

이성계가 짐짓 예민한 대화를 피하려 하자 촌로들은 더욱 강경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장군! 저희들은 작정하고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 오늘 여기 모인 것입니다.”

철야현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촌로들이 꼭 미륵사를 들러 가라는 권유가 있어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서늘한 초가을 아침 일찍 미륵사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장군! 이제 다 왔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사찰이 바로 미륵사라는 절입니다.”

“산세가 참으로 오묘하고 아름답소이다.”

“예, 절을 감싸고 있는 산은 덕룡산이옵고 사찰의 터는 봉황이 알을 품고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라 들었습니다. 예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여는 미륵의 화신으로서 용과 봉황같은 영웅이 출현할 길지로 여겨져 왔다고 들었습니다.”

“어서 오시지요”

미륵사 입구에 다다르니 키는 작으마하나 눈에서 형형한 광채가 나는 스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 맞아 주었습니다.

“두 분께서는 참으로 좋은 기운이 풍겨 나오고 있습니다. 혹시 정도전 대감과 이성계 장군이 아니십니까?”

“아니, 어떻게 그런 것까지….”

정도전과 이성계의 입에서 동시에 놀람과 탄성이 나왔습니다.

“정도전 대감께서 오래전 나주의 유지들과 교류하시는 것을 먼 발 치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이성계 장군께서는 너무나 귀한 인물상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이 썩은 고려나라를 뒤엎고 반드시 새로운 세상을 오게 하실 그런 얼굴상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승려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이미 널리 퍼져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로다.”

이성계는 어제와 오늘 나주사람들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새삼 가벼이 흘려 들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군, 소승이 보기에는 때가 다 찼습니다. 지체하지 마시옵소서.”

“허어. 내 이런 말씀 듣자고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찻잔을 앞에 두고 미륵사의 큰스님과 잠깐 동안의 만남을 가졌지만 대화내용은 너무나 깊고도 큰 것이었습니다.

지체치 말고 부디 대업을 이루시라는 미륵사 스님과 작별을 하고 나오니 오후의 초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