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마약청정국가인가? 김희준 |
| 2019년 02월 21일(목) 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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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남에 소재한 클럽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마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에 따라 언론의 취재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특히 버닝썬 클럽에서 물뽕(GHB)이 유통됐다는 제보가 잇따르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물뽕은 필자가 1998년도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로 근무하던 시절 최초로 적발하고 이름까지 붙여준 신종마약이다. 이러한 연유로 최근 필자는 본의 아니게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를 했다.
물뽕의 정식명칭은 GHB(Gamma-Hydroxy Butrate)이다. 강한 성적 흥분 작용이 있는 이 마약은 무색·무취로서 상대방이 알기 어렵기 때문에 주로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여성 몰래 술에 타서 투약을 시킨다. 주로 자기 자신이 투약하는 히로뽕, 대마 같은 일반마약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물뽕은 대부분 성범죄에 사용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데이트강간 마약(Date Rape Drug)라고 부른다. 필자는 당시 히로뽕을 밀매하려는 일당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수사관들을 매수인으로 위장해 거래를 시도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수사는 성공하여 마약밀매 일당들을 모두 검거했고, 그 과정에서 큰 생수통 2통을 압수하게 됐다. 그 안에는 물 같은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이 히로뽕이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히로뽕은 분말 형태여서 왜 물처럼 생겼냐고 물으니 그들은 제조기술이 발달해 액체형태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필자는 위 물질이 당연히 히로뽕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그런데 감정결과는 황당하게도 그냥 맹물로 나왔다.
유통 경로를 확인해보니 그들은 오산 소재 미군기지 안의 흑인으로부터 구입했다고 했다. 공급책을 검거하기 위해 미 공군 특수수사대에 연락해서 미군과 미군가족들 사진첩을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가명을 사용한데다 흑인의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워 공급책을 찾아내는데는 실패했다. 그들은 계속 히로뽕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필자는 위 액체가 단순한 물은 아니고 무엇인가 특이한 물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군 수사관에게 감정을 부탁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감정할 방법이 없고 미국본토에 보내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한달 후쯤 감정결과가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GHB라는 신종마약이었다. 만약 미국에까지 감정의뢰를 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결과였다. 당시 이 내용은 마약의 청정지대인 광주·전남지역에서 신종마약이 발견됐다면서 전국적으로 크게 보도가 되었다. 필자는 GHB를 마약류에 등재시켜 달라고 법령개정 건의를 하였고 결국 2001년 법률상 마약류로 지정됐다.
이러한 경위로 발견된 물뽕이 이번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전 국민적 관심대상으로 떠오르면서 과연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가가 맞는지, 마약단속시스템은 제대로 구축돼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청정국가의 기준은 마약류 사범 적발통계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게 과연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마약사범들이 암약하고 있는데 제대로 적발해내지 못해 통계상 청정국가처럼 비추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필자는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필자가 광주지검 강력부에서 마약전담을 할 때 마약 수사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전에 비하여 거의 10배에 가까운 마약사범을 적발했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마약청정지대인 광주·전남지역에서 마약사범이 급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그 종류뿐만 아니라 그 경로도 매우 다양화되고 있다. 그에 반해 적발시스템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그동안 마약수사를 전담해 오던 강력부 폐지가 논의되고 있고, 이에 따라 마약수사관들의 사기가 갈수록 저하되고 마약수사를 하겠다는 지원자도 별로 없는 상황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마약사범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우리나라도 마약의 위험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청나라가 아편 때문에 붕괴되었듯이 마약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봉쇄하지 않으면 나라의 존망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가가 맞는지, 현재의 시스템만으로 마약사범에 대한 철저한 대처가 가능한지에 관해 전 국가적 차원에서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