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건 ‘전두환 폭동’이었다 나의갑 |
| 2019년 02월 24일(일) 18:17 |
|
전국종합일간지 ‘토요판’(2월9일) 신문이었다. “세계 만국에 조선 독립을 선언하노라” 신문기자를 떠난 뒤 어느 사이 제목만 훑고 넘어가는 ‘제목독자’가 되어 버린 내 눈이 자동으로 큰 제목에서 작은 제목으로 내려갔다. ‘8일 동경서 유학생 400여명 담대한 함성…“일본 불응한다면 영원한 혈전” 선포.’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가슴을 두근거리며 운동장에 모여서 불렀던 노래가 왔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입속으로 비장하게 흥얼거린 삼일절노래가 툭 끊어진 건 ‘2·8 동경 유학생 독립선언’ 기사 밑에 배치한 ‘금배지 3인의 광주테러’ 때문이었다. ‘“광주폭동…5·18 유공자 괴물집단” 망언 쏟아낸 한국당 의원들’. 거의 본능적으로 제목독자를 놔버리고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국회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 기사 본문을 벌컥 들이마셨다. 39년 전 공수부대에 잡혀 두들겨 맞은 진압봉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 봄날 것보다 더 아팠다. 명색이 국회의원이란 근엄한 입들이 광주에 던진 ‘폭탄’이라서 그랬던 모양이다.
‘폭동’이라는 말과 ‘폭도’란 말이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이이므로, 그니깐 ‘폭동’의 주체가 ‘폭도’이므로 당신들 말씀을 존중한다면, 나도 일정 정도 폭도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시위대 틈에 섞여 때론 시위대를 끌고 다니기도 했고, 바락바락 악도 썼고, 펜을 버리고 총까지 들었으니 폭도 아니고 무엇인가. 많은 광주 사람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나, ‘광주폭도’, 이종명 의원의 ‘광주폭동’한테 귀 좀 빌려달라고 정중히 청한다. ‘폭도’나 ‘폭동’의 원생산자는 누구며, 광주의 이마에다 왜 그 벌건 불도장을 찍었는지 알아나 봤느냐고 고요하게 속삭이고 싶다. 또 그 확대재생산자가 누군지 알기나 하는 거냐고.
‘폭도’는 5·18 4일째인 21일 처음으로, 하루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제조된다. 이날 내보낸 전남북계엄분소장 윤흥정의 호소문에 두 번, 계엄사령관 이희성의 담화문에 세 번이나 ‘폭도’라는 용어를 등장시켜 광주를 ‘폭동의 도시’로 몰아갔던 것이다. 여기서 꼭 새겨야 할 건, 5·18 당시 대통령이나 계엄 당국에서 발표한 담화문 등의 문건은 반드시 전두환의 보안사가 직접 생산하거나 초안 또는 지침을 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전두환과 그의 보안사는 무엇 때문에 ‘폭도’라는 물을 광주에 댔던 것일까? 답은 간명하다. ‘폭도’보다 더 좋은 대국민 설득용 도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계엄 상황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계엄군을 투입해 진압하는 건 국민상식이지’, 국민들한테서 그런 소릴 듣고 싶었던 거다.
전두환과 그의 보안사는 ‘담화문을 통한 폭도 공작’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말 안 들으면 ‘폐간 조치’ 등으로 언론을 강압해 ‘폭도’를 쓰게 한다. 21일부로 5·18에 채운 족쇄를 풀고 계엄사령관 이희성의 담화문을 전국종합일간지(신문)와 방송에 던져 준다. 하나같이 토를 달지 않은 채 ‘먹이’를 준대로 받아먹었고, 그 바람에 많은 국민들은 언론이 글과 말과 그림으로 제시한 광주의 틀에 오랫동안 갇혀 있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종명 같은 사람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들은 또 광주·전남지역을 커버하는 신문(옛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과 방송(KBS, MBC, CBS, 전일방송)도 조치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두 신문이 공수부대의 잔학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 ‘검열 받지 않는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광주 505보안부대가 21일자부터 발행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인데, 이때 방송도 강제로 꺼버렸다. 신문과 방송이 광주편을 들게 되면 정권탈취 가도에 탈이 붙을까 싶어서였을 게 자명하다.
‘폭도 공작’은 그들의 우수 발명품이라 하겠다. 그 용어 하나로 ‘광주사태’의 성격 규정이 이뤄졌을 뿐 아니라, 광주가 39살을 먹은 지금까지도 그 ‘폭도’로부터 고통받고 있음이 그 증좌다.
씩씩하게 묻고 싶은 말도 있다. ‘광주가 폭동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이 폭동했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라는 게 하고픈 말이다. ‘폭동적 시위진압’이란 말이 있는데, 1997년 대법원은 5·18사건 판결 때 이 ‘폭동적 시위진압’을 인정했다. ‘계엄군이 난폭하게 광주 시민의 시위행위를 진압한 행위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협박에 해당함은 명백하고…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러한 목적이 없는 계엄군을 이용, 난폭하게 시위를 진압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시 요지다. 다시 나, ‘광주폭도’는 말한다. 국민은 5·18 내란수괴인 전두환한테 ‘광주폭동 총사령관’이란 직함을 내줘야 할 것이고, 역사는 본명 곁에다 ‘5ㆍ18전두환폭동’이란 새 이름표를 달아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가 5·18을 쥐어뜯을 때 ‘전두환 폭동’으로 받아치면 ‘새 이름 효과’가 최상급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