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의 일본 작가 비평] (2) 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마쓰다 도키코는 ‘하나오카(花岡) 사건’을 어떻게 보았나

2019년 06월 20일(목) 19:03

나나쓰다테 사건 현장을 방문한 최광순 할머니

중국인 포로가 하나오카 지역에 끌려오기 전의 조선인과 일본인 희생, 그 가능성에 대한 마쓰다 도키코의 의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다지 사건이 알려지지 않은 1950년 8월(하나오카 사건 현장 첫 방문을 앞두고) 그녀가 그 정도로 지역에서 일어난 당시의 일과 노동 강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근거이기 때문이다.

나나쓰다테 사건 발생 배경

하나오카 지역에서 온 대표 중 한 사람은 실은 나나쓰다테 사건(1944년 5월29일)으로 동생을 잃은 다바타 이치조(田畑市藏)씨였다. 사건 발생 배경에 대해 이보다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이는 없었으리라.

“낙반―강의 함몰이었죠. 전쟁말기였기에 마구 파대어 나나쓰다테 갱도 위(광상의 상부에 해당하는 지표)를 흐르던 하나오카강의 밑바닥을 꿰뚫어 암반과 강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그래서 죽었어요. 저의 남동생도 죽었죠.”(‘하나오카와 나’)

그의 증언에 힘입어 마쓰다 도키코는 “전시증산을 위한, 너무나도 안전을 무시한 난굴(亂屈)로 인해 결국 갱도 바로 위를 흐르고 있던 하나오카 강의 밑바닥이 허물어져 한 순간에 강 전체가 갱내로 함몰됐다”(‘하나오카 사건 회고문’)고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함몰 후 한일 노동자가 합세해 함몰된 갱도로 들어가 흙탕물에서 암반까지 파내 조선인을 1명 구출했으나, 갱도 안에서 강철 끌이나 해머로 살려달라고 두드리며 신호를 보내는데도 회사는 공사 차질을 우려해 갱내 폐쇄 작업을 명령한 사실도 적시했다.

전쟁을 위해 증산만을 강요한 일본제국주의와 추종기업 동화광업의 소행이었다. 동화광업은 국책회사 제국광업개발주식회사의 지배 하에서 당시 군수대신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군수차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제국광업주식회사 사장(동화광업 회장) 수가 레노스케(菅札之助)의 명령만을 쫓는 기업이었으니 오로지 전쟁 수행을 위해 혈안이 돼 있었던 셈이다.

1961년 제2차 하나오카 현지조사 (나나쓰다테 조혼비 앞에서)

나나쓰다테 갱도 붕괴, 하나오카 사건으로 이어져

도쿄의 교바시(京橋)공회당에서 전국금속광산노동조합의 대회가 열린 것은 1950년 8월30-31일. 이들에게 증언을 들은 뒤 마쓰다 도키코는 하나오카 사건 현지조사에 나섰던 것인데, 그때까지는 1944년 5월29일에 조선인 11명과 일본인 11명이 목숨을 잃은 그 나나쓰다테 사건이 도화선이 돼 중국인포로 대량학살(하나오카 사건)이 벌어진 사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즉, 그 사건 때문에 허물어진 하나오카강의 수로변경공사를 위해 다수의 중국인이 투입돼 결국 하나오카 사건을 불러오는 과정에 대해서는 숙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안광을 번뜩이며 예리하게 파고드는 마쓰다 도키코의 시선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파묻힌 건 23명이었는데 우리가 회사와 싸워 구출작업을 해서 한 사람 구해낸 게 조선인 노동자였죠.…나머지 22명도 최선을 다해 구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애썼지만 불가능했어요. 뿐만 아니라 회사는 ‘전시’(戰時)라는 구실을 내세워 파묻힌 22사람의 유골도 발굴하지 않은 채… 내 남동생 아직 나나쓰다테에 묻혀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생생한 목소리로 마쓰다에게 들려준 광산 지주부(支柱夫) 다바타씨는 이후 상당기간 나나쓰다테 사건 희생자의 유족대표로 활약하며 희생자 유체 발굴과 정당한 보상을 위해 투쟁했다. 하지만 회사 측의 완고한 태도로 유체발굴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마쓰다 도키코의 가슴은 불처럼 뜨거워졌다.

사건을 규명해 그 실체를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마쓰다는 밤중에 두 사람을 집으로 불러 나나쓰다테 사건이 발발할 당시의 노동 강화의 상황, 중국인포로가 유입되기까지의 경과를 캐물었다. 그들의 증언은 마쓰다의 현지탐방 조사를 재촉한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나나쓰다테 조혼비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을 손으로 더듬으며 오열하는 최광순 할머니.

나나쓰다테 사건 70주년을 돌이키며

돌이켜보면 필자가 연구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된 근본적 이유도 하나오카 사건의 중국인 희생보다도 그 사건의 토대가 된 조선인 징용자의 희생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2009년 처음으로 한일공동으로 추모식이 열려 현지를 탐방하고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한 후(2010년 8월16일자 ‘문화저널21’에 게재), 다시 아키타 오다테시(하나오카 지역)를 방문한 것은 5년 후인 2014년 5월이었다. 나나쓰다테 사건 70주년의 추도식 참가와 심포지엄 보고의 목적만은 아니었다.

실은 회사 측에서 노천채굴 방식으로 개발해 현장을 훼손했거니와 기념비를 세우기는커녕 조혼비의 희생자 이름도 창씨개명된 상태다. 다시 한 번 두 눈으로 조선인 희생자들이 파묻힌 터를 확인하고 가능한 일을 찾기 위함이기도 했다.

마침 조선인 희생자 최태식 씨의 유족인 최광순 할머니와 동행하는 만큼 그 의미가 얼마나 각별했겠는가. 또 70년 만에 나나쓰다테 사건으로 희생된 일본인 유족과도 조우하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있었다.

오다테시 신쇼지(信正寺) 경내 나나쓰다테 조혼비 앞에서 5월29일 열린 추도식에서 행사집행위원장 차타니 주로크 씨는 조혼비 앞에 한국식으로 무릎을 꿇고 참배했다. 일본 측 아키타현 지사와 오다테 시장의 메시지, 한국 측 센다이(仙台)한국총영사의 메시지도 식장에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최광순 할머니는 조혼비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그 순간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우리 고장 광주의 근로정신대 할머니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징용피해자 유족의 설움이기에 최 할머니의 눈물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가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불법노역에 시달리다가 귀국해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당하며 회한을 세월을 보내야 했던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의 눈물과 다를 바 없었다. 또한 근로정신대 여동생을 도난카이 지진으로 잃고 피눈물을 삼키며 여동생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투쟁해온 고 김중곤 어르신의 통한의 눈물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김정훈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전남과학대 교수>

미쓰비시중공업은 우리 피해자 측과 17회에 걸쳐 서로 이견을 조정하며 협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할머니의 인권조차도 조약과 제도의 틀에 매어 두려는 일본정부의 국가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려는 것일까.

5월29일 추도식이 열리기 전에 최광순 할머니는 아버지(최태식)가 목숨을 잃은 현장을 70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할머니는 녹음이 우거진 유원지로 변해버린 현장의 풀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지하 50m의 갱도에서 일했을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아버지 딸이 왔어요. 젊은 나이에 이곳에서 얼마나 고생하셨어요”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마쓰다 도키코 사후 10년 후의 일이지만, 마쓰다가 현장에 있었다면 이 조선인 희생자 유족의 눈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마쓰다는 하나오카 사건의 근본 원인은 ‘일본의 천황제와 독점 지배’, 그리고 ‘침략적인 군국주의’에 있다고 지적했다(‘하나오카 사건 회고문’). 이들 지배계급에 대한 분노와 그들로 인해 빚어진 이국 희생자들에 대한 성찰의 마음으로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마쓰다 도키코는 “이 나나쓰다테 함몰로 인해 빚어진 지역 광부의 희생이야말로 중국 포로들을 이 광산으로 끌어들이는 진짜 동인(動因)이었다”(‘하나오카 광산을 찾아서’)고 주장한 바 있다. 전시 하 조선인과 일본인의 희생을 일찍이 예견한 뒤 줄곧 나나쓰다테 사건의 연장선에서 하나오카 사건을 살핀 마쓰다 도키코의 통찰력이 엿보이는 주장이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