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신문 기사 프린트

고양이에서 기생충까지

최형천
전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경영학 박사)

2019년 06월 23일(일) 18:22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아이를 갖게 되고, 그들이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한다. 젊은 남녀는 기꺼이 그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부모도 하지 못했던 결혼의 완성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그들이 아이 하나 양육하는 것은 우주선을 타고 미지의 행성을 찾아 떠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사방을 둘러봐도 손을 내밀거나 기댈 곳이 없는 망망대해였다. 그 많은 가족도 사회도 국가도 그들을 방관할 뿐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그들은 버는 액수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것을 도구로 상대를 지배하려는 천박함은 자신에게는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생활이라는 전쟁터에 던져진 전우로써 서로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썼다. 연민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속되는 힘겨운 상황은 그들 안에 내재해 있던 영혼의 좋은 부분, 선의와 호의, 배려심까지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이제 결혼 안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서로에게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강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미워해야할 대상은 서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사회제도라는데 합의 한다. 결국 그들이 결혼으로 아내와 남편이 되고, 부모가 됨으로써 얻은 것은 자기의 상실이다. 그리고 자기의 상실은 결혼의 해체에 이른다.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그들은 비로소 자기의 자리를 마련한다.

이것은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윤이형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란 소설의 줄거리다. 문학상 심사평에 의하면 두 반려 고양이의 삶과 죽음을 통해 ‘완벽하게 단절되고 고립된 현대 사회의 삭막함과 현대인의 뼈저린 고독’을 그려낸 수작이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에게 불안감과 좌절감을 안기는 결혼 제도, 부모 세대와의 단절, 취업의 어려움, 그리고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한다.

한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올해의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부잣집인 박 사장네 집에 가난한 기택의 가족이 한 명씩 한 명씩 들어가 기생해서 살아가는 서글픈 영화이다. 세계의 영화평론가들은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야기된 계급화라는 전 인류의 공통적인 문제를 잘 터치하여 세계인들의 보편적 공감을 얻었다고 평하였다. 온 세계가 신자유주의 정책에 매몰되면서 양극화는 이제 전 지구적 현상이 되고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달라지지 않는 고단한 삶을 견뎌내는 최후의 선택이 스스로를 포기하고 가진 자에게 기생하는 삶일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도덕적인 부자들의 자선에 기대어 기식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자들의 실상을 리얼하게 여러 장르를 사용하여 그린 작품이다.

기택네 가족은 가난하고 백수일지라도 무능하지는 않다. 비록 경력을 위조해서 취업하지만 그들은 맡은 자리에서 유능하게 일한다. 하지만 학위가 없고, 자격증이 없으며, 부자들과 매개가 없던 그들은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다. 반면에 박 사장 가족 즉 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한 자들의 사연을 알 길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극적 결말이 보여주려는 것은 양극화된 세계가 마주보고 달리면 폭력이 해결수단이 될지도 모른다며, 그런 현실을 직시하라는 감독의 문제의식이 담겨있는 엔딩이라 짐작할 수 있겠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열심히 산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갖는 구조가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상받는다는 우리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 논리는 경제학 교과서에나 있는 이론으로 전락해 버렸다. 사회구조적인 문제, 제도의 폭압성은 개인의 선함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가 발표한 올해 응모작의 소설적 경향은 ‘고통스러우며 견디기 힘든 각박한 현실과 삶의 조건을 문제 삼고 있는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다. 영화도 소설도 자본주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있다. 비록 불편하지만 이런 현상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문화현상이다. 우선 오늘의 현상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겸손함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고 공생하는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좀 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두 작품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아픔을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모티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