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 과잉’ 문턱을 넘은 광주의 다음 선택은 이정록 전남대 교수·前 대한지리학회장

2019년 07월 09일(화) 19:08

필자 단골 식당 ‘돌담집 추어탕’으로 가는 도로 한 쪽이 재개발로 폐쇄됐다. 주인은 느긋하지만 필자 불편은 상당하다. 승용차로 식당에 가려면 한참 돌아가야 한다. 3년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할 모양새다. 하지만 따닥따닥 붙어 있던 집들이 철거돼 시야(視野)가 뻥 뚫려 좋다. ‘재개발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광주의 흔한 일상이다.

일본 도쿄 도요대(東洋大) 노자와 치에(野澤千繪) 교수가 쓴 ‘오래된 집 무너지는 거리(흐름 출판, 2018년 4월)’라는 책을 다시 들춰 봤다. 원제(原題)는 ‘늙은 집 무너지는 거리 주택 과잉 사회의 말로(老いる家崩れる街住宅過剩社會の末路)’이다. 책의 핵심은 이렇다. “일본에서 2033년에는 3채 중 1채가 빈집이 된다. 빈집을 상속받은 자녀들은 주택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지자체는 빈집과 인프라 관리에 막대한 돈이 든다. 고령화가 심각한데도 고층 아파트를 계속 짓고 있어 걱정이다.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에 어떤 주택과 도시를 후손에게 물려줄지 고민해야 한다.”

노자와 교수는 ‘인구 감소 시대를 고려해 도시 정책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더 이상 주택수와 거주지 면적을 늘리지 말라’고 주장한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도시 외곽에 새로운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짓는 것보다 노후화된 집을 재정비해서 오래 사용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주택 자산 가치 하락은 물론이고 ‘부동산 버블’에 따른 경기 침체, 미래 세대에 대한 부담 등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노자와 교수 주장에는 ‘일본은 주택 과잉 사회’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인구 1천명당 주택 착공 건수(2014년)는 일본이 영국보다 2.8배, 미국보다 2.3배, 프랑스보다 1.3배 높고, 일본 주택 수명(30년)은 거꾸로 영국(77년)과 미국(55년)보다 짧아 공급을 부추기는 구조적 속성이 있다는 거다. 여기에 지자체는 인구를 유입시킨다고 주택 건설 허가를 남발하고, 개발업자는 캐시플로우(현금 흐름)를 위해 주택 건설 사업을 연쇄적으로 이어가면서 공급 과잉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틀리지 않은 진단이다.

그렇다면 광주광역시는 주택 공급 과잉 상태인가, 그렇지 않은가. 국토교통부 2018년 자료를 보면, 분양 실적(공동 주택)은 2017년 대비 25.7%, 5년(2013-2017) 평균 대비 14.8% 각각 감소했다. 5개 지방 광역시 5년 평균(-5.5%)보다 월등하게 낮았다. 착공 실적(전체 주택)은 2017년 대비 60.2%, 5년 평균 대비 42.9%로, 준공 실적(전체 주택)은 2017년 대비 25.8%, 5년 평균 대비 18.5% 각각 감소했다. 5년간 추세에서 분양 실적은 분명한 공급 초과를 보인다. 큰 폭의 착공과 준공 실적 감소는 공급 과잉을 암시하는 신호다.

향후 주택 공급 상황을 추정케 하는 주택 인허가 실적(전체 주택) 추이를 살펴보자. 국토교통부 자료에 의하면, 2018년 인허가 실적은 1만4천999호로 대전·울산보다 많다. 5년 평균은 3.0%로 실적 추세에는 큰 변동이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분양·착공·준공 실적은 5년간 계속 하향 추세인데도 불구하고 인허가 실적엔 큰 변화가 없다. 분양 실적이 마이너스(-) 추세라면 인허가 물량도 축소돼야 맞다. 인허가 물량에 증감이 없다는 건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예년 수준으로 인허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추정케 한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19 상반기 주택 동향’이 그 증거다. 2019년 광주 주택 거래량은 2018년 상반기 대비 40.2% 감소했지만, 인허가 물량은 거꾸로 254.7%(5천774가구) 증가했다.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에 의하면, 광주 인구는 2022년 147만3천331명으로 정점을 찍고 2030년 141.8만명, 2040년 133.9만명, 2047년에는 126만명 수준으로 감소한다. 그런데 전술한 자료를 종합하면, 광주에서는 인구 감소와 관계없이 주택 인허가는 당분간 현재 추세를 유지해 매년 1만3천 가구 내외 물량이 발생하고, 주택 착공 준공 실적은 인허가 물량과 연동되며, 분양 실적은 계속 15∼20% 선을 나타낼 거란 추정이 가능하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메가트랜드와 광주의 주택 인허가·공급 정책은 완전 미스매칭이다.

광주는 주택 공급 과잉 도시인가? 그렇다. 적어도 전술한 자료에만 근거한다면, 광주는 주택 공급 과잉 도시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게다가 관련 전문가들은 지방 대도시, 특히 광주에 그런 사인을 오래 전부터 보냈지 않았는가. ‘광주는 주택 공급 과잉 도시’라고 전제하면, 노자와 교수 시각(視覺)을 광주에 대입(代入)해도 큰 무리는 없다. 혹자는 일본 현재 모습은 10년 후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하지 않는가.

필자 단골 식당 ‘돌담집 추어탕’으로 가는 도로가 3년 내 풀리길 바란다. 불편 때문에 단골 식당을 바꿀 순 없지 않은가. 그런데 우회하는 날품을 더 팔아야 될 성싶다. ‘주택 공급 과잉’에 접어든 작금의 광주 사정 때문이다. 그렇게 떠벌이는 ‘문화 수도 광주’ 체면을 세우려면 이젠 도시 주택 정책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