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의 품이 그립다 이계양 |
| 2019년 07월 14일(일) 1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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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기외집이 있고 대부분이 초가집인 마을,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허름한 울타리로 경계를 이룬 마을, 곳곳엔 크고 작은 키와 모양을 가진 나무와 꽃들 갖가지 채소와 농작물들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무질서로 어우러져 소박하고 유치하게(?) 보이는 마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차린 동네,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가 나의 살던 마을이었다.
그런데 마을이 달라졌다.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가 숲을 이루어 하늘을 넘보고,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골목과 도로의 흙을 섬멸하여 버렸고, 예쁜(?) 벽화가 그려진 높은 담벼락이나 담쟁 또는 장미꽃을 어깨에 걸친 철제 구조물로 경계를 이룬 아파트 울타리, 화단마다에 질서 정연하게 나무, 꽃 종류별로 우아하고 품위 있게 조경된 아파트 단지가 요즘 내가 사는 마을이다. 물론 그런 아파트가 소망인 많은 무주택 서민들의 시린 가슴은 잠시 논외로 치자.
그림 같은 게 아니라 그림인 마을에 살면서도 요즘 곳곳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나 ‘도시 재생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왜 일까? ‘나의 살던 동네가 그리워’서가 아닐까? 또 피폐해져 가고 있는 고향 마을을 보면서, 아파트 숲속에 살면서 여름이 되면 ‘광프리카’라고 찜통더위를 자조하는 가운데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마을을 살리는 것이 인도를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사람마다 달리 이해할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사람이 살만한 마을, 사람이 살기에 좋은 마을이라고 본다. 우리가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재생하여 이루고자 하는 마을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사람이 살기에 좋은 땅과 하늘과 자연에 대한 욕망과 현대산업문명의 크고 많고 빠르고 높은 것에 대한 욕망은 늘 대척점에 있다. 거대구조를 지향하는 현대산업문명은 지방의 작은 마을들을 소멸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고향 마을에 대한 그리움은 이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을 만들기’ 사업이나 ‘도시 재생 사업’이라는 산소마스크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많은 사업비를 들여 구조와 체계를 갖추어 마을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한지? 가능하다고 해도 괜찮은 것인지? 괜찮다면 어떤 점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나 괜찮은지? 질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혹시 국민의 세금이 고향 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수단 삼아 몇몇 사람이나 업자의 배 채우는 일에 쓰이지 않나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벌써 ‘마을 만들기’ 사업과 관련하여 ‘몇몇의 마을권력’들의 마을 토지 매매의혹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한 사례들과 ‘도시 재생 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나는 등 좋지 않은 징후들이 보이고 있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나의 살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아무래도 인위적인 돈과 구조와 체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품 문제가 아닐까 한다.
‘품’이란 두 팔을 벌려서 안아 주는 가슴 즉 두 팔을 벌려 아기를 안는 엄마의 가슴 같은 것이다. 품속엔 따뜻함이 있고 쉼이 있고 이해가 있고 사랑이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재생이 있다. 달걀이 어미닭의 품속에서 병아리가 되는 재생 말이다. 아무리 돈을 들여 마을을 꾸미고 도시를 갈아엎는다 해도 그 ‘품’이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품’은 오로지 사람의 문제다. 공동체의 문제다. 페허가 된 산골에 복숭아꽃 살구꽃을 심는다 해도 꾸준히 심고 가꿀 사람들(공동체)이 있어야 하고, 무더위에 산들바람이 불어와도 그 속에서 함께 어울릴 사람들(공동체)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품’은 돈 등 인위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다스려야(自治) 할 문제이다.
‘품’ 되기를 거부하는 차갑고 으슬으슬한 시대 현실 속에서 따뜻함, 쉼, 이해와 사랑이 있는 ‘품’을 가진 자치공동체가 그립다. 자치(自治)의 ‘품’이 있는 마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