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의 왕조음악 컬렉션] 연산군과 ‘女樂’ 흥청, 운평, 속홍, 채홍이라는 이름으로…‘女樂 1만명 시대’

2019년 08월 27일(화) 18:57

2015년 개봉한 영화 ‘간신’ 중 채홍사가 전국의 미녀를 뽑아 올리는 장면./Daum 영화

<연산12년 3월 27일> 전교하기를, ‘흥청악 1만명을 지공(支供)할 잡물과 그릇 등을 미리 마련하라.’하였다.

‘조선왕조실록’ 燕山君日記(3) 14집 46면

연산군은 조선 제 10대왕으로 이름은 융(隆)이고 성종의 맏아들로 12년간 왕위에 있었다. 재위기간(1494-1506) 중 두 차례의 사화(士禍)로 많은 선비를 희생시키는 참극을 일으키는데 연산군 4년(1498)의 무오사화와 연산군 10년(1504)의 갑자사화가 그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이 사화를 기점으로 연산군의 광기(狂氣)는 극에 달하는데 특히 1504년 갑자사화 이후 그 폐단이 극악무도에 치솟으며 폭군의 최대 정점을 보여준다. 특히 연산군은 여자와 말(馬)에 집착하며 채홍준사(연산군때 미녀(美女)와 좋은 말을 구하기 위해 지방으로 파견한 관리)가 각 도로 돌아다니면서 미녀를 색출해 기녀로 올렸고,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 높은 등급의 여기(女妓)들은 신분은 낮을지언정 사기(沙器), 목기(木器) 그릇을 사용하는 등 사대부들 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지니게 됐다. 연산군은 1505년(연산11년) 6월 이계동을 전라도, 임숭재를 경상도·충청도 채홍준사로 임명한 것이 처음이다.

연산군이 여자에 집착하며 생기게 된 변화는 다른 왕조 음악문화에서 있을 수 없었던 여악(女樂·궁중 또는 지방 관아에 매인 관기(官妓)들이 행하던 가무와 풍류)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이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보면 국가기관에 소속돼 신역(身役)으로 악가무(樂歌舞)를 공연하는 여자 음악인을 여악(女樂)이라 지칭했다. 여자 음악인이란 뜻으로 여공(女工人), 여령(女伶), 기악(妓樂), 여기(女妓), 기생(妓生), 기(妓), 기녀(妓女), 창기(娼妓), 관기(官妓) 등의 이름도 쓰였다

연산군 묘.

조선의 4대 사화(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중 두 번의 사화(士禍)를 일으킨 연산군은 자신을 음해하려는 세력에 대한 공포심과 걱정으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고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녀들과 함께 음악과 술에 취해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 중 영화와 드라마 등 이야기 소재가 가장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나타난 사료 즉 여악(女樂) 관련 음악기사를 살펴보면 12년 동안의 연산집권 기간에 정치적인 흐름보다는 음악적으로 관련된 놀이적 요소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크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악(女樂)을 담당하는 여자 음악인들의 명칭과 등급의 변화과정이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난다.

기생, 기녀, 창기, 여기(女妓)등으로 불리던 명칭이 흥청, 운평, 속홍, 계평으로 개명됐고, 악공의 명칭이 광희(廣熙)로 바뀌었다. 장악원(조선시대에 각종 제사와 의례, 각종 행사의 음악과 음악교육, 악공·악생의 관리를 담당)의 명칭이 연방원으로 개명되었고. 연은전(경복궁 서북쪽에 있던 의경세자의 사당)이 여기(女妓)들의 거처지인 회사각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 여자 음악인들에게 7원 3각이라는 새로운 거처지가 마련되는 등 여러 가지 변화 과정을 겪게 되며 그 기능과 역할이 뚜렷이 나타난다. 7원(院)은 취홍원, 뇌영원, 진향원, 함방원, 집람원, 취춘원, 수향원이고, 3각(閣)은 채하각, 회사각 나머지 한 곳의 이름은 사료에서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기녀들의 거처나 모든 생활은 7원 3각 즉 10곳의 거처지에서 각 기능별로 지내게 되었다.

이들은 각 등급별로 나뉘는데 가장 높은 계급 흥청은 세과(천과흥청 : 연산군의 성은을 입은 여인, 지과흥청 : 연산군의 맘에 안 든 여인, 반천과 흥청 : 성은을 입었다가 연산군의 맘이 바뀐)로 나뉘며 운평(태평한 운수를 만났다는 뜻으로 흥청이 되기전의 예비생), 계평(운평 중에서 선발한 자를 계평이라 한다), 속홍(성악을 잘하는 자), 채홍(속홍들과 함께 활동한 女妓이나 성격은 다름)의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그 기능이 구별됐다. 이들의 지위 역시 그 기세와 권력이 대단하였으니 모든 후궁을 여기(女妓)들 중에서 간택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산군의 여자 장녹수(숙원)가 신분상승의 대표적인 예이며 이 외에도 흥청계급의 여원(원주기생 월하매), 숙화(나주기생 백견)도 연산군이 아끼던 여기(女妓)로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 무고, 검무, 처용무 등 여악(女樂)의 춤사위를 볼 수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연산11년 1월 3일〉전교하기를 ‘취홍원이 뽑아 들인 흥청은 무리를 나누어 이름을 쓰고, 또 이름 밑에 생년과 본적 및 소속되어온 연월을 적되, 그 수가 3백이 되기에 이르러서 그치고, 그 책을 제목 하여 장화록이라 하여 병조 판서 임사홍으로 하여금 써서 올리게 하라’ 하였다.

<연산11년 2월 21일> 전교하기를, ‘장악원을 원각사에 옮기어, 가흥청 2백, 운평 1천, 광희 1천을 여기에 상사(常仕)케 하여, 총률(摠律) 40인으로 하여금 날마다 가르치게 하라’ 하였다.

<연산12년 6월 5일> 전교하기를 ‘악기를 해마다 만들어 취홍원에 두고 전습하도록 하라’ 하였다.

<연산11년 9월 15일> 전교하기를 ‘죽은 흥청악의 무덤을 지키는 내관(內官) 한사람에게는 상복(喪服)을 만들어주라’

연산군의 여기(女妓)에 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이 여자음악인들은 겉으로는 화려한 생활이 가능했으나 여러 가지 고통을 감내해야했다. 지아비를 만나다 걸리면 국문을 당했고 곱게 단장하지 않으면 금부에 가뒀으며 아기를 낳으면 산채로 오작인이 묻어버리게 했다. 이 시기에는 음란한 악가무(樂歌舞)가 행해졌다고는 하나 이들을 관리 감독하고 음악을 책임지고 가르치는 능력 있는 늙은 기녀가 학습을 시켰기 때문에 음악 공부를 게을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레 음악에 관한 학습은 체계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김선희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단원)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여악(女樂) 관련 음악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연산군은 스스로 음악을 아는 자였고 악기 역시 여러 현악기와 타악기가 있었지만 풀피리와 초적을 잘 부는 자를 각 도에서 뽑아 올릴 정도로 음악에 관한 관심도가 높았다. 그 또한 재능이 있었으니 특별히 처용무(처용 가면을 쓰고 추는 춤)를 좋아하며 잘 추었다. 이 시기에는 여악(女樂)의 구성원인 여기(女妓)의 명칭변화와 등급, 생활상을 자세히 기록하는 등 다른 왕조 음악문화에서 볼 수 없는 여악(女樂)의 위치와 역할의 변화가 나타났다.

조선시대 음악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여악(女樂)이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폐지론도 제기됐었지만 여악(女樂)이 존재함으로서 오늘의 음악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사회적인 위상이 높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전문성을 지닌 여성 예술가로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