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가 품은 국립광주박물관 이야기] ‘신안선’ 출항 700주년, 그 위대한 여정 2023년 신안선 출항 700주년, 세계인이 향유할 수 있는 계기로

2019년 08월 28일(수) 18:46

국립광주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지난 3월13일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간. 국립광주박물관 대강당은 여든여섯의 유점자 선생의 조금은 생소한 노랫가락으로 가득 찼다. 유점자 선생은 전남 무형문화재 제52호 ‘신안씻김굿’ 보유자다.

3월 행사의 명칭은 지난 1월 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온 1만7천여점의 신안해저문화재의 무사 귀환을 기념하는 소위 ‘신안해저문화재맞이 기념행사’였다. 이런 행사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한 무속의례 가운데 하나인 씻김굿 공연이 왜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펼쳐졌던 것일까?

우리가 흔히 ‘신안해저선’ 또는 ‘신안선’이라고 하는 어느 무역선은 1975년 8월 어느 날 한 어부가 6점의 도자기를 건져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신안선 발견 지점.

1976년 10월부터 시작된 발굴은 1984년까지 9년 동안 11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여기에서 도자기 2만여점, 동전 28t, 금속품 1천여점, 자단목 1천여점 등 다양한 종류의 것들이 확인됐다. 잘 알려진 사실이기는 하지만, 신안해저문화재의 발굴은 국립광주박물관을 건립하는 계기도 됐다.

발굴에서 신안선이 언제,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가 목적지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경원로(慶元路)를 새긴 저울추와 물품의 꼬리표인 목간이 그것이다.

원나라 ‘경원’은 현재의 중국 저장성, 닝보시다. 즉 닝보가 신안선의 출발지였다. 한편, 목간 300여점 가운데 ‘지치삼년’(至治三年)이라는 원나라 연호가 새겨진 것들이 있어, 1323년 출항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목적지는 목간에 수령인으로 하코자키 궁(�u崎宮), 강사(剛司), 도호쿠 사(東福寺), 조자쿠 암(釣寂庵) 등 일본 관청과 사찰이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 하카타 항(博多港)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경원로를 새긴 저울추, ‘지치삼년’을 쓴 목간, 관음보살.

신안선은 위로 올라갈수록 급격하게 넓어지는 형태로, 최대길이 34m, 최대 폭 약 11m, 최대 깊이 약 3.7m, 중량은 200t이나 됐다. 이 배는 1492년 에스파냐 팔로스 항을 출항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보다 훨씬 큰 명실상부 당대 최대의 배였다.

한편, 이 배는 중국 남방에서 나는 나무가 주재료인 점과 용골(이물에서 고물에 걸쳐 배 바닥 중심선에 따라 설치된 길고 큰 재목) 양 끝에 구멍(보수공)을 파고 거울과 동전을 넣은 점으로 보아, 푸젠 성(福建省) 취안저우(泉州)에서 건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대 항로 연구자들에 따르면, 12-13세기 중국 닝보에서 일본으로 가는 항로는 중국 해안을 따라 산둥 지역까지 올라왔다가 서해를 건너 우리의 서해연안을 따라 가는 항로가 주로 이용됐다고 한다면, 14세기에는 음력 5-6월에 부는 서남계절풍을 이용해 제주 부근을 거쳐 하카타로 직항로가 선호됐다고 한다.

그런데, 신안선의 수많은 무역품들은 4월22일 싣기 시작해 6월3일을 끝으로 싣는 것이 끝난 것으로 봐 신안선 역시 당시 선호하던 직항로를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역품을 넘기고 큰 이문을 꿈꾸던 중국인은 물론이고, 주문자가 보냈을 법한 일본인, 어쩌면 고려인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든 출항 준비를 끝낸 1323년 음력 6월 어느 날 배는 경원항을 떠났다. 출항에 앞서 바다의 신께 무사한 항해를 기원했겠으나, 선원들의 품에는 뱃사람들의 무사항해에 효험이 있다는 관음보살상이 있었다. 그만큼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머나먼 항해는 두려운 것이었을 것이다.

인양 직후 정리 중인 도자기(사진 위)와 인양 직후 묵서명 나무상자.

경원항을 떠난 배는 순풍에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갔다. 파도가 잔잔해지자 중국인 선원들이 모여 바둑을, 일본인 선원들은 장기를 두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그러나 출발한지 채 5일도 되지 않아 저 먼 바다에서 몰려오는 검은 먹구름과 심상치 않은 바람, 점점 더 크게 일렁이는 파도는 몇 번이고 같은 길을 오고갔던 선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구름과 바람과 파도는 점점 배를 집어 삼킬 듯이 몰아쳤고, 급기야 배는 선원들이 힘 쓸 사이도 없이 바람에 밀려 신안 앞바다까지 밀려왔다. 큰 비바람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던 선원들은 육지가 보이자 “이제야 살았구나”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뱃머리 우현에서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갯바위나 암초에 부딪친 것이다. 여기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급기야 배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선원들도 그들의 꿈도 모두 물거품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3월13일 유점자 선생의 씻김굿은 당시 신안선에 탑승했던 선원들의 넋을 달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처 이루지 못했던 그들의 꿈을 국립광주박물관이 잇겠다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지난해부터 도자문화를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 더 나아가 미래를 연결시키고, 한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연결하는 도자전문 박물관으로 발돋움하려 한다.

이를 위해 2018년 뉴스레터 발행, 학술지 창간, 2019년 신안해저문화재 이관, 세계 도자문화 특별전 개최 등 다양한 사업들을 펼쳐오고 있다. 뉴스레터와 학술지 창간 등 학술기반 조성이 배에 화물을 싣는 준비 작업이라고 한다면, 2019년 1월 1만7천여점의 신안해저문화재 이관은 출항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에 시작해 8월18일에 마친 ‘세계 도자문화 특별전 1 ‘중국 자주요 도자 명품전 : 흑백의 향연’’은 순풍이라 할 수 있다.

웅대한 국립광주박물관의 여정에서 신안선 출항 700주년을 맞는 2023년은 첫 번째 귀항일이 될 것이다.

진 정 환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관>

이를 위해, 국립광주박물관은 한·중·일 3국은 물론 세계의 여러 국가와 기관들이 참여하는 전시·학술대회·문화행사 등 ‘신안선 출항 700주년 기념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로써 신안해저문화재는 한국을 넘어서고, 아시아를 하나로 묶으며, 세계인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국립광주박물관의 의지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국가의 지원이나 다른 국가·기관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사회의 관심이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와 전남지역민들이 국립광주박물관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서부터 그 관심을 보여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