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의 일본 작가 비평] (8)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도쿄 상경 직후 만난 박영생과 국경·신분 초월한 교류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2019년 12월 19일(목) 17:58

부임해서 교편을 잡은 모교 다이세이초등학교 창립 100년 기념비.

프롤레타리아문학 열정 불태워

마쓰다가 도키코가 상경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등져야만 했을까?

도쿄행 결심을 굳히기 3년 전인 1923년(18세) 마쓰다는 이토 선생의 조언에 힘입어 아키타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관비생으로 기숙사생활을 하게 된 마쓰다는 일시적이지만 가난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약간의 자유를 맛본다.

1년간의 사범학교 생활을 마치고서는 모교 다이세이초등학교에 부임해 학생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푼다.

하지만 의부의 차별은 여전했다. 월급을 송두리 채 그에게 바쳐야 했고 귀가해서도 가축들에게 줄 먹이 찌꺼기를 마련하기 위해 가르치는 제자들의 집까지 방문해야 하는 수모를 견뎌야 했다.

그때 초등학교 동급생들이 진보적 문학잡지를 창간하여 활동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이토 에노스케(伊藤榮之介)라는 프롤레타리아 작가가 학교를 방문했다. 그의 모습을 보고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1926년 조선인과 교류 시절의 마쓰다 도키코.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는 하나 마쓰다의 교원생활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광산 소유의 미쓰비시 측에 빌붙은 교장은 마쓰다의 학생 지도방식에 사사건건 간섭했다. 급기야는 진보잡지에 실은 시에 대해서도 악의에 찬 공격을 가했다.

그러던 와중에 마쓰다는 이성에 눈떠 바이올린을 켜는 취미를 지닌 선광(選鑛)인부를 사귄다. 그는 노동을 하면서도 감성을 키우는 일에 몰두하는 낭만적인 청년이어서 마쓰다는 그를 만나며 교원생활의 애로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의 교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마쓰다가 19세가 되던 해 그는 징병으로 소집됐고 그에게서 이별의 통보를 받는다. 교원으로 2년의 의무기간을 마치면서 실연을 맛본 마쓰다는 뭔가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미쓰비시’라는 권력이 학교에 영향을 미치는 모순, 의부가 경제적으로 속박하는 일상. 거기에서 탈피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믿었다. 더구나 마쓰다에게 실연은 새로움을 모색하는 데 심리적 동기를 부여했다.

‘노동자가 인간적으로 대접받는 사회를 이룰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마쓰다는 어머니의 지지 하에 문학적 꿈을 펼치기 위해 상경한다.

상경 후 숙부 미야자키 지스케의 집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도쿄에 올라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바로 그때(1926년, 21세)의 일이었다. 바로 그즈음의 마쓰다의 행적이 최근 국내에 공개된 바 있다.

마쓰다는 그때 한 조선인 여학생을 만났으며 그 조선인 여학생과의 교류체험을 그로부터 12년 후인 1938년 ‘월간 러시아’ 9월호에 발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외국인과 관련한 수상(隨想)’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조선인 교류체험기. 마쓰다는 거기에 간다(神田)의 N영어학교에 다니며 조선인 박영생(朴永生)과 친하게 지내며 느낀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핍박받던 조선인을 바라본 따뜻한 시선

당시 일본 내지에서 조선인을 보는 시점은 어땠을까?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록이 참고가 된다.

1925년에는 (일본정부가) 다시 도항제한 제도를 실시했다. 일본경제의 만성적 불황으로 실업자가 증가해 조선인 노동자의 유입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무성은 조선총독부에 도항제한을 요청했으며 부산항에서 취직 불확실한 자에 대한 조사를 강행했다. 그 후 도항제한은 해마다 강화됐다.

더구나 1925년의 치안유지법 시행, 1926년의 ‘조선인 생활상황 조사방법에 관한 건’ 등의 통지에 의해 단속도 강화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불황보다도 훨씬 심각해 실업과 기아에 허덕이던 조선농민은 관할경찰관 주재소의 증명서를 가지고 합법적으로 도항하는 사람 외에 어선을 타고 비합법적으로 도항하는 사람도 많았다.(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일본해 지역의 재일조선인 형성과정’)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 내지에서 활동하는 자체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내지에서 조선인 생활에 대한 단속도 심해지는 분위기였으니 조선인 처우가 좋을 리 있었겠는가.

1925년 천황의 ‘칙령’으로 공포된 치안유지법은 일본 내의 반전평화 세력과 노동자, 농민계급을 탄압하는 구실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내지와 다를 바 없이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도 적용돼 이 법률에 의해 조선의 독립운동은 말살의 대상이 됐다.

1923년 마쓰다 도키코가 수학했던 아키타사범학교.

치안유지법은 일찍이도(1925년 11월) 조선에서 사회주의 사상의 탄압이라는 구실로 66명을 검거해 악명을 떨쳤다(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일본의 조선지배와 치안유지법’). 나중엔 일본 내지에서 적용하지 않은 사형판결을 식민지 조선에서만 내려서 적지 않은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다. 악법임에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이 심화돼가는 와중에 마쓰다는 “마음이 허전하고 벗이 그리워 타향의 느낌밖에 들지 않은 도쿄를 개처럼 냄새를 맡으며 배회했다”고 밝혔다(‘외국인과 관련한 수상’). 그리고 처음으로 알게 된 친구가 “박영생(朴永生)이라는 아름다운 조선의 동성(同姓)”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며 박영생이 자기보다 조금 늦게 N영어학교에 들어왔고 “소매가 긴 흰 조선복장을 본 순간 충동적으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고 술회했다.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은 마쓰다가 시대적 분위기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순수한 인간적 교류의 시점에서 박영생의 모습을 아름답게 느꼈거니와 조선의 복장에 매료돼 그녀 곁으로 먼저 다가갔다는 점이다. 또한 마쓰다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영생의 일본어 실력이 충분하지 않음을 확인했으며, 자신이 ‘불’, ‘조금’, ‘가져와라’, ‘양초’ 등의 조선어를 알고 있음을 공개했다.

뒷부분에서 밝혀지지만 아버지의 누나인 숙모가 조선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조선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터. 하지만 그게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마쓰다는 조선인을 상대적 타자로 인식하였고 인간적인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에세이의 제목이 ‘외국인과 관련한 수상’이라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그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마쓰다는 “그 백의(白衣)의 인간의 서투른 언어 저편에 보이는 느긋하면서도 약간 당황하는 듯한 웃음이 완전히 나를 안심시켰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영생에게 “친구가 돼 달라”고 말한 사실과 “당시의 나는 왠지 이국 사람과 사귀는 듯한 느낌으로 영생에게 다가갔다”는 속내를 고백했다.

영생도 받아들여 친구가 되고, 마쓰다는 고향으로 돌아가 한 달 뒤 다시 상경한다. 그러나 영생과 만날 수 없게 돼서 마쓰다는 그 원인을 영생이 N학교를 그만뒀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러한 사람이 아직 재적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무원에게까지 찾아가 확인한다. 마쓰다의 영생에 대한 호감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많은 조선인이 일본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전쟁이 발발한 후로 지원병 제도나 국경 문제가 그 점을 강화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건 그렇더라도 난 조선적인 특수함의 좋은 점은 어디까지나 지켜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최승희의 무용도 조선적인 것을 순수하고 고고하게 지키려고 하는 점에서 감명깊었다는 것을 나는 다수의 관중의 한사람으로서 고백한다. 일전에 신협(新協)극단이 완성한 춘향전도(중략) 조선을 고국으로 품고 생사를 같이해온 선조들의 심정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통절하게 호소한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외국인과 관련한 수상’에서)

당시 일본 내지의 일반적인 시점에서 보는 조선인상을 초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면적인 동화’보다 ‘파고들어갈 수 있는 만큼 심부로 파고들어가(마음을 나누)는 것이 민족과 민족의 깊은 사랑의 출발’이라고 본 마쓰다의 시선은 순수한 인간애 정신이 국경과 신분과 계급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마쓰다는 1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영생과 와세다(早稻田)의 공중목욕탕에서 재회했다고 에세이에 썼다. 숙부 집에서 나와 도쿄의 이쪽저쪽 거처를 옮겨 다니다가 와세다에서 셋집살이를 시작한 무렵이었다.

영생이 결혼해서 아이를 갖은 상태였는데도 마쓰다는 영생의 집을 찾아가 그들 부부와 식사를 자주했다는 미담을 전했다.

영생부부와 식사를 함께하며 ‘조선민족의 역사, 젊은 조선인들 삶의 문제, 조선 문화의 특징’ 등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은 것은 마쓰다에게 당연한 일이었을 터. 조선에 대한 관심과 조선인에 대한 이해 없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김정훈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객원연구원, 전남과학대 교수>

‘외국인과 관련한 수상’에서 조선인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조선 사람들 속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고 조선인 자신에게도 우리에게도 중요시 여겨야 할 독특한 이국적인 것이 아직 많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나 조선인을 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여실히 느껴진다. 마쓰다가 기술한 바와 같이 에세이는 그녀가 교류한 조선인과의 체험을 토대로 조선식민지 시절의 조선인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마쓰다의 조선관과 조선인상의 원점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자료임에 틀림없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