엷은 구름과 풍경소리, 허공을 배회하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55)

2020년 02월 11일(화) 17:42

尋僧(심승)
월사 이정구

돌길이 가파르고 이끼에 미끄러워
구름과 풍경소리 허공을 배회한데
사미승 하는 말씀이 스님께서 안 오니.

石逕崎嶇杖滑苔 淡雲疎磬共徘徊
석경기구장활태 담운소경공배회
沙彌叉手迎門語 師在前山宿未回
사미차수영문어 사재전산숙미회

조선 역사는 유교에서 찾는다. 그렇지만 고려가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만큼 불교의 자비로움 앞에서는 늘 평화롭고 자유로웠다. 공부를 독실하게 하다가도 불교에 심취한 선비가 있었는가 하면, 마음이 허전할 때 스님을 찾아 차 한 잔은 물론 곡차(穀茶) 한 잔쯤은 거뜬하게 했었다. 선비다운 모습이자 학문하는 길이었다. ‘사미승이 손을 잡으며 절문에서 맞이하면서 하는 말이, 스님은 앞산에서 주무셔서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엷은 구름 성근 풍경소리가 허공을 배회하네’(尋僧)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1597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고, 1598년 명의 병부주사 정응태가 조선이 중국을 침범하려 한다는 무고사건을 일으키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월사가 ‘무술변무주’를 작성해 무고임을 밝혀 파직시켰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돌길이 가파르고 이끼에 지팡이 미끄러운데 / 엷은 구름과 성근 풍경소리 허공을 배회하네 // 사미승이 손잡으며 절문에서 맞이하면서 하는 말 / 스님은 앞산에서 주무셔서 돌아오지 않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스님을 찾았더니]로 번역된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이었지만 불교는 뿌리 깊은 민족 종교로 생각했던 조선의 역사였다는 한 페이지를 시문을 통해 읽는다. 사대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민중들도 사찰을 찾고 스님을 만나 인생을 논했고, 세태도 들으면서 같이 했던 생활상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시인 또한 이러한 생각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사찰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돌길은 가파르고 이끼에 지팡이 미끄러운데, 엷은 구름과 성근 풍경소리 허공을 배회한다고 했다는 선정(先情)을 쏟은 그림이다. 고차원적인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엷은 구름과 성근 풍경소리란 시적인 운율과 대구적 처리능력이 진하게 색칠한다.

화자는 후정을 후경이란 그림을 그려내려고 한다. 사미승이 반갑게 손을 잡으며 절문에서 맞으면서 하는 말이, 주지 스님은 앞산에서 주무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는 대화 한 구절이다. 흔히 시는 선경후정을 담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다. 그럼에도 여기에서는 이런 규칙이 바뀌어 있다. 전구에서는 정의 감정을 노출했고, 후구에서는 사미승과 대화하는 경의 시상을 두고 있다.

※한자와 어구

石逕: 돌길. 崎嶇: 가파르다. 杖滑苔: 지팡이가 심히 미끄럽다. 淡雲: 엷은 구름. 疎磬: 성근 풍경 소리. 共徘徊: 함께 배회하다. // 沙彌: 사미승. 叉手: 손을 잡다. 迎門語: 절문에서 맞이하면서 말하다. 師: 스님. 여기서는 큰 스님임. 在前山: 앞산에 계시다. 宿未回: 자고 돌아오지 않는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