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가 왜 이 모양인가 박대우 |
| 2020년 03월 12일(목) 1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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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다.” 1995년 4월, 베이징에서 기자들을 만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작심하듯 질타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로서 이건희 회장의 이날 발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란을 불러왔다.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과 관료, 그리고 기업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정치권과 관료들은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고, 기업들은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 주를 이뤘다. 그나마 경제가 정치에 비해 앞서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 우리 정치는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그나마 있던 자리에서도 뒷걸음질 치는 난망함뿐이다. 4·15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지금쯤이면 국민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득표를 위한 선거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여야를 비롯한 각 정당들은 이번 국회의원 선거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선거방식에 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조차도 좌충우돌하고 있다. 오로지 의석을 늘리기 위한 꼼수가 판을 치고, 찢어지고 합쳐지는 난장판이 계속되고 있다. 그 어디에서도 비전이나 소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비례투표용 위성정당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검찰의 기소로 낙마한 전직 장관을 지켜내야 한다는, 이제껏 들어보지도 못했던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막장이고 한심한 코미디다. 이럴 바에야 기존의 정당 대신 차라리 대놓고 포퓰리즘 정책을 약속하는 정당을 선택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쪽 다리를 들고 공중부양을 시도하는 정치인의 현수막이 거리에 등장하고, 이 당의 예비후보가 전국적으로 넘쳐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난잡한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국민 여론의 분열은 더 심각하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적이 되고, 지역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면 등을 돌리고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다. 환멸을 느낀 국민들이 정치로부터 멀어져 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오히려 정당이나 정치인들에게는 호재일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그들을 지지하는 소수의 참여만으로 낮은 투표율의 선거에서 승리하고 왜곡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을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정치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으려는 혐오에 가까운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가적 위기감이 커지고 세계 각국은 감염 확산 방지를 이유로 대한민국에 대한 장벽을 높이고 있다. 당연히 수출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받는 충격은 우려했던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고, 서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들다. 대외적인 여건도 심각한 국면이다. 중국과는 사드배치 이후, 일본과는 지소미아 논쟁 이후, 미국과는 방위비 협상을 놓고 여전히 힘겨루기가 진행 중이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였던 남북관계 역시도 최근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 발사를 기점으로 위태롭기만 하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그동안 우리 정부를 향해 쏟아부었던 막말과는 차원과 심각성이 다른 사안이다. 국제사회 역시 엄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개성공단에서 마스크를 생산하자는 설익은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심각한 상황조차도 진영논리를 통해 바라보고, 지지층의 결집을 통한 선거승리의 도구로 활용하는 여야의 정치적 편향성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쯤 되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정치를 삼류, 사류로 구분하고 탓하기에 앞서 무엇이 원인이고, 그 해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투표장에서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온전한 이성과 합리적 판단을 가진 수천만 주인들이 호통을 쳐야 한다. 우리 모두 투표장으로 가자, 도대체 정치가 왜 이 모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