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훈의 일본작가 비평](11)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탄압에 대한 저항의 시선으로 조선인을 작품화 |
| 2020년 03월 25일(수) 1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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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혁명작가 고바야시 다키지가 치안유지법 체재 하에서 학살당한 것은 마쓰다가 ‘쌀 내놔라 운동’에 참가한 이듬해(1933년 2월)였다. 특별고등경찰의 잔학행위는 이미 금도를 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으로 살펴보면 구타와 고문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다키치의 유체는 온통 타박상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온통 가짓빛이다. 하반신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오른 상태다. 그것으로도 부족했을까? 경시청에서는 검열을 더욱 강화한다. 작가 사후임에도 ‘주오공론’(中央公論)에 실릴 다키지 작품 ‘당 생활자’의 전문 9만자 중 1만6천자를 삭제하고 복자로 표시하는 박해를 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당 생활자’라는 제목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당 생활자’는 ‘전환시대’라는 이름으로 게재됐다.
다키지의 작품 판금이나 게재 금지와는 별도로 ‘당 생활자’의 5분의 1정도가 탄압 대상이 된 ‘삭제, 복자의 역사상 최고 기록’(야마자키 하지메, 월간 ‘불굴’ No433, 2010년)임에 다름 아니다. 탄압의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1932년 여름 마쓰다 도키코는 고바야시 다키지와 요코하마에서 함께 강연하기도 했고 1929년엔 ‘여인예술’ 등에 다키지의 작품 감상을 토로하기도 했다. 2살 연상인 동향출신 작가에 대한 애틋함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터.
마쓰다는 에구지 간(江口渙)의 전보를 통해 고바야시의 학살 소식을 듣고 곧바로 차남을 등에 업은 채로 고바야시의 자택으로 향했다. 특별고등경찰이 이를 용인할 리 없었다. 마쓰다는 차남과 함께 스기나미경찰서로 즉시 연행됐다.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러 갔다가 갇힌 마쓰다의 심경이 어땠을까? 통한의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쓰다는 ‘아사히신문’의 인터뷰(2004년 3월 5일)에 응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이 나왔을 때 너무나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해 깜짝 놀랐습니다. 만나보니 겸손하고 조용하고 침착한 사람이었습니다. 1933년 특별고등경찰에게 학살됐을 때 어린 차남을 업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연행되어 작별의 인사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키지처럼 자신의 사상을 생명화한 사람은 드문 만큼 평생 동안 인상 깊게 느껴왔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의식했으므로 ‘권력’ 측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내게도 생긴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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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다키지의 죽음이 마쓰다에게 울분을 배가시킨 것은 지난해 이미 동료의 학살 소식을 접하고 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노동운동가 이와타 기도(岩田義道)가 경찰의 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비극을 마쓰다는 목도했었다. 그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 하던 상태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변호사도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할 정도였다. 후세가 격렬하게 항의한 사실은 알려져 있다.
마쓰다는 1933년 1월 잡지 ‘대중의 벗’에 다음과 같은 시를 발표해 이와타 기도의 죽음을 애도하며 권력의 탄압을 고발했다.
데스마스크에 부쳐
그 사람은 이와타 기도(岩田義道)
그 사람은 당의 사람
우리에게 손 다리 얼굴을 알리지 않고
그저 우리에게 투쟁하는 것만을 가르쳤네
그 사람은 투쟁 전사
투쟁했기 때문에 쇠사슬에 묶이고 달라붙은 옷 입은 채
우리를 착취하고 억압하고 생활의 애달픔으로 옥죄는
천황의 부하에게―죽임당한 사람
이와타 기도
아아 이 사람에 이어지는 혈통
데스마스크 찍어낸 ‘아카하타’를 통한
아아 우리의 혈통
언제 좋아질지 모르는 생활 속에
그대의 죽은 얼굴을 곧바로 비추는 불빛
그대의 부풀어 오른 입술 속 얼어붙은 치아는
우리에게 그 쇠사슬을 물어뜯도록 힘을 돋우네
이와타 기도
프롤레타리아는 그대에게 맹세하리
우리를 착취하는 자 그대에게 바치리
혁명
혁명의 이름으로.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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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산계급 지도자에게 압제의 칼날을 휘두르는가? 무엇을 위해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과 그들이 구축해온 민주주의의 성벽을 훼파하는가.’
마쓰다는 이 시의 제목과 자신의 이름 위에 이와타 기도의 유체 상반신 사진을 배치해 발표한다. 이 시는 즉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군데 복자 표시가 가해졌으며 판금당한 시집 ‘참을성 강한 자에게’(1935)에도 실리지 못했다(에자키 준). 그 이듬해인 1934년 권력의 강압적 조처로 작가들은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 경찰은 급기야 구라하라 고레히토(藏原惟人)나 미야모토 겐지(宮本顯治) 등의 문인을 검거한 뒤 작가동맹을 해산시키고 만다.
-조선인들의 투쟁을 그린 ‘행진도’ 발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런 탄압에 조금도 굴하지 않은 마쓰다 도키코의 행보. 그리고 그 행보가 항상 조선인에 대한 관심을 동반하는 점이다. 문화탄압이 철저히 자행되는 와중에도 마쓰다가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을 완성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마쓰다는 1934년 조선인들의 투쟁 모습과 그들의 심리를 조명한 이례적인 작품 ‘행진도’(行進圖)를 발표한다. 회고하건대 무산계급의 권익과 주장을 외친 작가들의 필치는 당시 진보적 문학운동의 시점에서 보면 보편타당한 메커니즘으로 수용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인을 테마로 한 작품이 작가들에게 공통분모를 형성하는 측면에서 동시대의 일본 독자들을 향해 메시지를 발화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본 계급주의의 상징적 작가로 잘 알려진 고바야시 다키지와는 또 다른 시점에서 마쓰다 도키코를 주시해야 할 근거라고 여겨진다.
고바야시 다키지 문학의 지향점에서 마쓰다 도키코를 분리하면 분리할수록 해체의 확장성이 엿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쓰다의 단편소설 ‘행진도’(마쓰다 도키코 자선집 4권 ‘여성고’에 수록·2005)는 1934년 ‘문학평론’ 12월호에 발표됐다. 작품 말미에 “1931년 이른 봄의 기록에서”라고 새겨져 있으므로 작가가 1931년에 집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피면 1931년 여름 중국 길림성 장춘시 교외에서 조선 이주민과 중국 농민의 충돌사건이 일어났다. 조선인들은 보복으로 조선과 일본 내지에서 화교학살사건을 일으켜 이게 중일 양국의 외교문제가 됐다(일본 위키피디아).
생존권 수호를 위한 조선인들의 투쟁은 어느 곳에서나 격렬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침략을 노골화하면서 식민지지배를 강화한 탓이었다. 당연히 조선의 빈곤은 극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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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도’는 4년전부터 도쿄항 건설 예정의 매립지에 판잣집을 짓고 생활하던 조선인 300여명이 새로운 도로건설을 위해 거주지를 시가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청으로 투쟁하러 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1930년대에 일본 제국주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일본 내지에서 조선인들이 생존권 사수를 위해 그들과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더구나 문학에 대한 탄압이 횡횡하던 시기에 마쓰다가 작가 생명을 걸고 조선인의 시점에서 차별과 계급 타파를 부르짖는 피지배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조선인과 조선에 대해 공공연히 묘사하는 자체를 터부시하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이색적인 작품이 용하게 발표됐다는 것 자체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다음 회에서 작품의 안팎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