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 시인 평설 몇 마디

2020년 04월 06일(월) 18:24

<묵시록>은 내가 홀로이던 아침 시간, 보이지 않아도 들리기도 하고 밟히기도 하고 걸리기도 하고 고이기도 하는 바람, 시냇물, 개미, 노루새끼…등이 숟갈로 떠먹는 ‘그 빛나는 말씀’이 되어 축복과 사랑에의 기도처럼 거룩한 본능처럼 “단단한 이빨로 꼭꼭 씹어 삼켜”피가 되고 살이 됐다는 메시지를 읽는다.


<무등 서설>은 “웅크린 잠에서 깬 상고대 여인들이”, “한 번도 역적 자식 낳은 적 없는 골짝” 무돌뫼에서 배역의 땅이라는 오명을 털어내는 강건한 정신을 담았다. 인상적인 것은 ‘창에 스민 달빛 난장’에 “불땀 그 깊이”를 재는 가슴 가득한 어머니 덕담 같은 길을 따라 곧은 뼈 주상절리로 서있다.


<젊은날의 초상>은 “파랗게 날이 선 시간들이 멈춰선” 시인이 걸어온 방황의 길목마다 외로움의 키를 늘인 ‘숱한 그림자들’이 아름답게 읽히는 작품이다. 어찌 이쯤에 등 돌리고 숨 죽여 흐느끼는 시인의 회한이 한두 번이겠으며 눈물과 한숨의 시간이 없었겠는가.


정형래 작가의 혼불문학관 기행은 1930년대 전북 남원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의 이야기로 당시 힘겨웠던 삶의 모습과 인간의 보편적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그린 최명희 작가의 대하소설을 안내한다. 17년 만에 전10권(5부)으로 완성됐다는 이 작품은 작가 이청준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이란 칭찬을 보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