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니, 달빛 안개가 마구 누르는구나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63)

2020년 04월 07일(화) 19:24

出獵(출엽)
가주 이상질

들판에 나섰더니 구름은 자욱하고
집안에 돌아오니 안개가 누르구나
말안장 먼저 걸고서 술상부터 찾았지.
出野雲平水 還家月壓煙
출야운평수 환가월압연
掛弓仍索酒 催解馬鞍懸
괘궁잉색주 최해마안현

시제의 의미는 ‘사냥 나가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사냥을 나가 즐거웠던 일로 시상을 일으키기 보다는, ‘무언가를 등에 짊어지고 돌아오는 즐거움이 더 컸기’에 시의 흐름은 귀가 쪽에 무게를 싣는다. 굵직한 산짐승을 사냥했다면 이를테면 ‘월척’(越尺)을 했으니 이웃에 자랑거리다. 어깨라도 으쓱하려는 심회를 담고 있을 것이다. ‘활을 벽에 걸고 바로 술을 찾으려고 했더니만, 서둘러 말안장부터 풀어 벽에다 걸어뒀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집에 돌아오니, 달빛 안개가 마구 누르구나’(出獵)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가주(家州) 이상질(李尙質·1597-1635)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사간원의 정언과 헌납, 병조좌랑, 춘추관기사관을 역임하고 홍문관에 추천돼 부수찬 겸 지제교로 제배됐던 인물이다. 이어서 호당에서 사가 독서했다. 곧 예조좌랑을 받았고 1632년 홍문관부교리가 되기도 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들판에 나서니, 물 위에는 구름 자욱하고 / 집에 돌아오니, 달빛 안개 마구 억누르는구나 // 활을 벽에 걸고 바로 술을 찾으려고 했더니만 / 서둘러 말안장부터 풀어서 벽에다 걸어두네 그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사냥 나갔다 돌아오며]로 번역된다.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냥이야말로 인생을 새로 배우고, 사냥 속에서 잡고 잡히는 ‘먹이사슬’ 관계를 안다고 한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나 먹이그물까지 익히 공부할 수 있다면 퍽이나 구미가 당기는 운동(?)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은 동물보호의 차원에서 단속의 대상이 된다.


시인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며 운동 차원에서 사냥을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시상으로 엮었다. 사냥을 하기 위해 들판을 나서니 물 위에 안개구름이 자욱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달빛 안개가 누르고 있다는 시상을 만지작거렸다. 시어를 대구 자리에 놓지는 않았지만 시상으로 보아 구름과 달빛은 대칭적인 관계에 있다.


화자는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출출한 목을 축이기 위해 활이며 말안장을 풀어야 한다. 사냥을 마친 후 활을 걸고 바로 술을 찾으려는 순서대로 말안장을 풀어 벽면에 걸어뒀다는 단순한 시상이다.

시의 전반적인 흐름은 전구에선 보고 느꼈던 일에 대한 선정(先情)으로 얽혔고, 후구는 했던 일에 대한 곧 사냥 다녀온 후의 순서가 잘 얽혔다.

※한자와 어구

出野: 들판에 나서다. 雲平水: 물 위에는 구름이 자욱하다. 還家: 집에 돌아오다. 月壓煙: 달이 연기를 압도하다. // 掛弓: 활을 벽에 걸다. 仍索酒: 이내 (곧바로) 술을 찾아 마시다. 催解: 서둘러 재촉하다. 馬鞍懸: 말안장을 풀다. 승마시에 제일 먼저 챙기고 푸는 행위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