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 봄(spring) 산드로 보티첼리 ‘프리마베라’ 만물이 생동하는 봄…‘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살포시 다가오다

2020년 04월 08일(수) 18:24

산드로 보티첼리 作 ‘프리마베라’(사진 첫번째)와 주요 장면을 확대한 부분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윤동주 ‘봄’)


나라 안팎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계절은 돌고 돌아 어김없이 봄은 다시 찾아왔다. 세상 만물들은 모두 이렇듯 은은하게 찾아온 봄을 맞이하며 하나 둘씩 싹을 틔울 채비를 묵묵히 해가고 있는 중이다.
봄을 말할 때면 흐드러지게 피는 ‘꽃’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지천에 피어나는 목련과 벚꽃, 튤립 그리고 추운 겨울을 깨고 피어나기에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개나리 또한 봄을 대표하는 꽃들 중 하나다. 봄과 관련해 이번에 소개할 작품 ‘프리마베라·La Primavera, 1482’에도 봄을 의미하는 제목에 걸맞게 무려 150여 종의 꽃과 약 500여 종의 식물들이 등장한다.

초기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년-1510년)의 명작 ‘프리마베라’에 대한 최초 언급은 바자리(Giorgio Vasari)의 책 ‘미술가 열전’(Le vite de’ piueccellenti pittori, scultori, e architetti)에서 였다.

또한, 이 작품은 ‘알레고리아 델라 프리마베라(l’Allegoria della Primavera, 봄의 알레고리)’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allegory(상징적 은유)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 많은 상징들이 숨겨져 있기에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화면 안에는 그리스·로마 신들을 비롯해 봄과 관련된 상징적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주요인물들은 아프로디테(비너스), 에로스(큐피드), 헤르메스(머큐리) 등 주로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로 각각 독특한 포즈를 취하면서 등장하고 있고, 만개한 꽃과 나무가 풍성한 봄의 정원은 꽃의 도시 피렌체를 상징하고 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화면의 오른편에는 땅을 향해 내려오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패보니우스)가 있고, 그로 인해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하고 있는 요정 클로리스가 있다. 그리고 그림 한가운데는 단정한 아프로디테가 서 있으며 그녀의 머리 위로는 눈을 가린 에로스가 화면 왼편의 세 명의 여인들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다. 이렇게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화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조금 더 그림을 읽어보도록 하자.

일단 그림의 오른쪽을 보면 생기 넘치는 봄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핏기없이 온통 파란색인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새벽의 여신 에오스(오로라)의 아들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다. 그림 속에서 입김을 불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는 제피로스는 두 볼 가득히 공기를 담아 따뜻한 바람을 뿜어내고 있으며, 이 서풍의 숨결을 따라 메마른 나뭇가지들 위에는 새싹이 돋고 열매가 자라나기 시작하는 중이다.

이런 제피로스 앞에는 자신을 쫓아오는 바람이 두려운 듯 도망치는 모습의 여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전혀 이 상황에 개연성이 없다는 듯 편안한 모습으로 꽃을 뿌리고 있는 여인이 서 있어 약간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의아해 보일 수 있는 이 장면은 제피로스에게 납치당한 ‘요정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하는 과정을 한 화면에 나타낸 것이다. 제피로스의 입김이 닿자 요정의 입에서 꽃 덩쿨이 나오고 있는 장면을 통해서 이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자유롭던 요정 클로리스를 납치한 제피로스가 속상해하는 그녀에게 땅 위의 모든 꽃을 관장할 수 있는 힘을 줬다는 신화 속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로써 요정은 봄의 전령사 플로라가 됐고, 따라서 서풍에게 쫓기는 여인과 꽃을 뿌리고 있는 여인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그림의 한 가운데 위치한 봄 정원의 주인공 아프로디테의 우아한 모습을 보자면, 마치 성모마리아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 당시 고대의 사상과 기독교 사상이 융합된 ‘르네상스적 신플라톤주의가 융성’했던 시기 탓에, 미의 전형으로서 성모마리아와도 같은 아프로디테를 그려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프로디테의 왼편에 있는 이 여인들은 아글라이아(화려함), 에우프로시네(기쁨), 탈레이아(축제)로 알려진 삼미신들로서 서로 손을 맞대고 춤을 추고 있다. 신들의 왕 제우스와 질서의 여신 에우리노메 사이에서 태어난 이 계절의 여신들은 봄을 맞이하기 위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신들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눈을 가린 에로스’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세 여신에 대한 이끌림 즉, ‘인간의 사랑은 분별력 없이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상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여신 옆에는 제우스(쥬피터)의 전령 헤르메스가 손에 작은 나뭇가지를 들고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이렇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체적인 그림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봄의 여신이 꽃을 틔우고 있고 봄을 기뻐하며 춤추는 삼미신 덕에 구름이 걷히며 마침내 완연한 봄이 도래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작품의 왼편 끝, 이야기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곳에 선 인물의 동떨어진 행동이 궁금해진다. 그가 신은 부츠와 헬멧을 통해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는 있다. 그리고 그는 ‘가드세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 지팡이를 허공에 대고 휘젓는 행위를 하고 있는데, 이는 봄의 정원에 더욱 많은 만물이 생성되도록 비를 부르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헤르메스의 하늘을 향한 나뭇가지를 통해서 ‘순환하며 매번 찾아오는 봄’을 나타내는 작품의 전체적인 스토리 또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화가는 왜 다른 봄의 전령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헤르메스를 갑자기 등장시킨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당시 르네상스기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을 후원하던 이들의 요구를 작품에 어느 정도는 반영해야만 했었던 이유와 통하지 않았을까 싶다. 보티첼리도 자신의 후원자이자 당시 명문가였던 메디치가를 위해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런 점들은 그림 속 가문의 상징인 오렌지 나무 등에서도 살펴볼 수가 있다.

이현남<전남대 미술이론 박사과정 수료>

프리마베라도 보티첼리가 후원자였던 로렌초의 조카를 위해 그린 그림이었고, 이 작품은 원래 메디치 가문의 여름 별장에 ‘비너스 탄생’과 짝을 맞춰 걸려 있던 작품이었다. 따라서 상업의 신이자 교역의 신인 헤르메스는 그림에서 지중해 무역을 통해 피렌체에 부를 가져온 메디치 가문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프리마베라’는 피렌체의 문화·정치·경제적 부활을 의미하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기념하는 작품으로 봄의 정원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메디치 가문의 역할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올봄은 예전처럼 꽃놀이를 떠나지도 아름다운 봄의 향기를 직접 대할 수도 없지만, 그보다 더욱 진한 서로에 대한 배려를 가슴에 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또 하나의 향기로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