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큐레이터 장경화 '오월의 미학'](4) 이상호 歷史의 새벽을 여는 ‘5월 전사’의 벼린 붓끝

2020년 04월 14일(화) 18:37

필자는 2010년 광주매일신문의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기념’ ‘민중미술 30인’ 특별기획에 이상호를 게재를 준비했으나 이상호는 장기간 정신병원 입원치료로 스튜디오 방문과 인터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비교적 양호한 건강상태와 함께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어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상호는 80년 중반 민중미술 막둥이 세대로 대학 화우들과 함께 위태롭고 급박한 시위현장에 쓰일 걸개그림과 만장, 포스터를 날을 세워 신속하게 제작해야 했다. 그렇게 그려진 걸개그림으로 1987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고문의 고통과 후유증으로 정신병원 입원과 치료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눈을 바라보면 맑고 선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이 80년대 뜨거웠던 시위현장에서 벼린 붓끝으로 역사와 시대의 정당성을 위한 ‘5월의 전사’가 돼야 했다. 왜곡되고 뒤틀린 시대와 현실을 온몸으로 껴안고 약속할 수 없는 역사의 새벽을 마주해야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5월의 벼린 붓끝으로 올곧고 건강한 시대로 평화통일을 열어간다.


▶‘그만 좀 쫓아와라’, 정신병원 40여년
1979년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과를 입학한 이상호는 ‘동국대 목포재향 향우회’(회원 20여명)에 가입, 모두 의식있는 동료 선배들과 함께 매일 서울역 앞 ‘서울의 봄’ 집회에 참여했다. 그러던 이듬해인 동국대 2년 ‘광주민주항쟁’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생활에 흥미가 없던 그는 동국대 불교미술학과를 중퇴하고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해 1984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다.

동시에 조선대 미술패 ‘땅끝’을 7명의 화우들과 함께 조직하고 이상호는 광주 ‘5월의 전사’가 됐다. 오전에는 학내시위 활동, 오후에는 사회운동 집회장에서 쓰일 걸개그림, 포스터를 쉬지 않고 급박한 분초를 다퉈 제작했다. 시위현장의 그림은 속도전이었기에 거의 매일 날을 새는 공동 작업이었다.

이상호는 한국 근·현대사의 어둡고 무거운 역사에 집중한다. 일제에 맞서 목숨을 내려놓고 항일을 했던 독립 운동가는 해방을 맞이하면서 빨갱이로 몰려 탄압을 받고 친일을 했던 세력은 제도권 안에서 부와 권력과 명예가 이어지는 굴절되고 모순된 역사에 분노한다. 그리고 해방이후 오늘까지 미국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신 사대주의와 그 권력에 굴복해 생존을 위한 시녀가 돼야 만 했던 현실을 반성한다. 특히 주변 강대국과 부당한 군사독재에 대한 옹호로 이 땅에 평화통일과 민주화는 깊은 수렁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려 한다.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은 분단현실에서 출발된 그의 붓끝은 용솟음치는 끓는 피가 됐다.

‘그만좀 쫓아와라’

그는 1987년 6·10항쟁에 적극 참여하면서 경찰에게 쫓겨 새벽까지 도망을 다녀야 했다. 군부 독재의 최루탄에 맞서는 그의 화염병과 함성은 정의요 개혁의 열망이었기에 멈출 수 없었다. 이때 제작했던 수많은 판화 중 ‘그만 좀 쫓아와라’(1987)가 있다. 쫓아오는 경찰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도심의 골목골목을 피해가며 질주하는 도망자는 극도의 긴장감과 두려운 공포가 있다. 그때 도망자였던 그는 곧이라도 판화에서 뛰어나올 듯하다. 칼끝에서 오는 속도감과 비장함, 쫓기는 긴박한 상황이 도망자 얼굴에 두려운 공포를 드러내고 독재자 시녀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은 서울역 앞과 광주 금남로에 새겨져 있다.

‘백두산 자락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 (이상호, 전정호 공동작)

그는 기념비적 걸개그림으로 80년대의 정점을 남긴다. 87년 8월 광주 YWCA에 내걸린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 새날이여’를 그의 화우(전정호)와 공동으로 제작한다. 걸개그림은 8월, 전국순회 첫 전시인 서울 그림마당 민에서 ‘민중해방과 민족통일 큰 그림 잔치’에 전시됐으며 9월 제주 순회전시 중 작품은 경찰에 압수되고 그는 구속된다.

이 사건으로 그는 남영동 대공 분서로 끌려가 조사와 고문으로 삶과 죽음의 50여일은 국가보안법 ‘고무찬양’과 ‘이적물 표현’이란 죄명을 받는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 후유증과 스트레스로 일반정신병원으로 이감됐다. 광주 미 시위와 화염병 투석으로 광주경찰서에서 폭행과 치명적인 머리 타격 이후 두 번째로 정신병이 더욱 심화된 것이다. 현재는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월 2회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민중불화로 아미타불을 보다
앞서 밝혔지만 이상호는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에 잠시 적을 뒀고 백양사 지선스님을 따라 두 번 출가도 했다. 이에 대한 명확하게 해명할 수 없지만 아마도 부당한 시대와 역사 앞에 그가 불교와 힘겨운 접점을 찾으려 했을까?

이상호가 자주 그리는 부처는 ‘아미타불상’으로 대부분 사찰의 극락전에 봉안돼 있다. ※‘아미타불’(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극락세상은 불과를 얻은 사람이 환생해 살아가는 세상을 지배하는 부처) 그는 ‘아미타불’에게 무엇을 바라고 그림을 그렸을까? 역사의 굴곡진 현장에서 의연하게 일어섰던 수많은 의병들,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가들, 부당한 권력에 외치던 민주투사와 노동운동가 선배들이 걱정 없는 극락 세상에 환생을 염원해서일까? 그 기도는 극락환생과 평화통일 그 지점에 맞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판화작품 ‘아미타여래도’(1998)가 있다. 이 작품은 본격인인 탱화나 불화를 본격적인 제작시기 전에 불화를 목판화로 제작한 첫 작품이다. 물론 불화를 그리기 위한 실험적 측면도 있었겠지만 ‘아미타불’의 세상을 목판화 양식으로 다량의 복제를 통해 보다 많은 민중과 함께 불교정신 나누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민중미술의 본연의 가치다. 특히 관심이 가지는 부분은 ‘아미타 불화’ 얼굴이다. 목판에 칼로 새긴 재료적 특성을 인지하더라도 극락세상을 지배하는 부처의 위계나 품위는 뒤로하고 인물상이 어수룩하게 조각돼 오히려 친근감이 우선한다. 아마도 그는 부처를 제작한 처녀작이라는 점에서 오는 세련미 부족도 이해되지만 그 보다 운주사의 수많은 돌부처와 같은 민중부처를 제작한 의도에 무게를 두고 싶다.

그는 종교화의 함정을 읽어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종교화에는 종교인이 원하는 전통 양식에 충실한 색채와 형상과 문양의 미학이 있다. 그는 종교화의 전통적 요구를 색채와 형상으로 설득력을 해쳐가면서 민중성을 결합시켜가는 미학어법을 체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불화는 전통불화를 민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민중불화’로 읽혀지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선덕사 후불탱화’

그의 불화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선덕사후불탱화’(1997)일 것이다. 이 탱화는 전통적 색상과 양식 그리고 형상에 충실하고자 노력이 불보살과 주변인물, 옷깃흐름 등 그림의 전반에서 읽혀진다. 이처럼 그는 불교정신을 냉정하고 성실하게 읽어가면서 인물형상과 색상 등 중앙부처의 주변 인물과 염주나 합장주 등의 형상 하나하나에 성실함을 담아내어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중앙 부처를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한 부처의 머리를 감싸는 아우라(Aura), 그 위부분에 백두산 천지를 그려넣어 웅장한 입체감과 함께 우리시대 민족의 통일염원을 그려 작가의 철학과 세계관을 담아 놓았다. 그만의 독창적인 민중불화의 세계를 반영한 작품이라 보인다.

이 지점에 종교화를 그리는 화가의 태도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종교화는 종교적 보편적 성질과 지향점이 정해져 있어 그 지점의 범주에 머물러 있어 부족함이나 넘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부족하면 부족함으로 어수룩함이 드러나게 되며, 지나치면 자칫 교만의 늪과 치기의 위험에 빠지기 쉬운 일이다. 즉, 자신이 그려 놓은 종교화는 수많은 대중의 기도와 숭배로 초월적 대상이 돼가는 화가는 스스로에게 함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세계관이 비할 수 없이 크기에 이를 대하는 작가적 자세는 종교지식과 자기철학과 집중력과 성실성 그리고 겸손함이 뒷받침돼야 한다.


▶통일을 염원하는 예술적 화두
이상호의 예술적 화두는 한반도 통일문제에서 출발돼 진다. 이는 그만의 문제이겠는가? 통일은 어린이부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꿈꾸고 있는 민족적 숙원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통일염원도’

그는 민족통일의 꿈을 ‘통일염원도’(2014)에 집약시켜 놓았다. 상부에 백두산 천지에서 하단의 한라산 백록담을 서로 연결하는 탯줄을 끌어당기고 중앙 연꽃이 된 김구, 문익환, 안중근 등 민족지도자와 민주투사가 있다. 광주 5월시민군과 양민을 끌고 가는 미군, 학살하는 독재경찰과 군인, ‘조국통일’을 혈서로 쓰는 민중이 있다. 작품의 화면구성은 통일을 원하는 민족진영의 사람들로 메시지를 담아내고 이를 방해하고 탄압하는 국가주의 세력도 함께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화면의 주 색상은 녹색과 함께 암갈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통일염원도’는 이상호의 야심작으로 색상과 조형방식이 민화적 요소를 끌어 들여와 완성도가 높게 제작된 작품이다. 화면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평면적이고 서술적 구성과 중앙에 강물이 흐르는 탯줄은 상부에서 하단까지 그려져 있다. 탯줄은 생명이다. 백두와 한라가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된 필연적 통일을 중심으로 연꽃이 된 역사 속의 인물은 부처가 되고 보살이 돼 한반도를 지키고 있다.

이상호는 지난해 말, 2020광주비엔날레 본 전시에 초대키로 결정됐다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오늘도 그는 비좁은 스튜디오에서 신작 제작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 참여에 큰 기대로 흥에 차있어 보인다. 야심찬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로 그의 작품 활동에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대를 걸어보고자 한다.

이상호는 80년부터 왜골지게 자기미학과 형상성 구축을 5월 현장에서 날을 세어가며 다져왔다. 또한 그는 역사를 원시안적으로 바라보며 평화통일을 위한 작가적 소명의식과 책무로 무장돼 있다. 민중미술 막둥이 세대인 그에게 남겨진 예술적 과제는 지금까지 체득된 형상성으로 민중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담아 낼 수 있기를 조심히 기대해 본다.

새벽 별들은 그의 눈빛처럼 맑고 크게 보인다.

※이상호는...
▶1960년 광주 출생
▶조선대 미술대학 졸업
▶개인전/ 역사의 길목에서(광주, 2015)
▶단체초대전
2015/5·18민주화운동기록관 개관기념전(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2014-2015/망원동 걸개그림전(광주, 망월동구묘역) 2013/오월 1980년대 광주민중미술전(광주, 시립미술관) 2010/광주민중항쟁 30주년 기념전(광주, 금호갤러리) 2008/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 20주년 기념전(서울, 모란미술관) 2007/아시아의 지금전(서울-쌈지스튜디오, 북경-아라리오갤러리)
▶사찰불화
광주 선덕사 극락전 후불탱화(1997), 임곡 광재원 포교당 약사여래 후불탱화(2001), 완도 신흥사 산신각 탱화(2006)
▶현재 민족미술인협회원, 민예총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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