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충성과 의분이 가을바람에 비길 만하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68) |
| 2020년 05월 12일(화) 19:17 |
|
완역재 강석덕
눈앞을 바라보니 산하는 옮겨지고
진의갑자 쓰는 마음 괴로와 하는데도
의리는 하늘에 닿고 비길 만한 저 바람.
眼中忽見山河移 書晉甲子寸心勞
안중홀견산하이 서진갑자촌심로
豈但高義凌天衢 忠憤直與秋雲俱
기단고의릉천구 충분직여추운구
도연명이 남긴 귀거래사는 고시풍으로 4행, 5행, 6행, 7행 등 시적인 율(律)의 얼개는 잘 갖췄지만, 탈정격의 틀에서 자유롭게 쓴 작품이다. 첫 연에서 “돌아가야지! 논밭이 묵어가는데 내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으랴! 이제껏 마음은 몸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근심할 수 있는가” 라고 했다. 시인은 ‘귀래도에서 눈앞을 문득 바라보니 옮겨지는 산하가 있었고, 진서의 갑자를 쓰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라고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봤다.
‘오직 충성과 의분이 가을바람에 비길 만하다’(歸來圖3)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완역재(玩易齋) 강석덕(姜碩德·1395-1459)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세종 초에 지양근군사로 발탁됐다. 선정을 베풀면서 인수부소윤에 승진돼 집의를 역임했다. 1441년(세종 23) 복직돼 우부승지가 되는가 싶더니만, 1444년 호조참판, 이듬해 대사헌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눈앞을 문득 바라보니 옮겨지는 산하 있어 / 진서의 갑자를 쓰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까 // 어찌 높은 의리가 하늘까지 닿았을 뿐인가 / 오직 충성과 의분이 가을구름에 비길 만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귀래도를 보면서(3)]로 번역된다. 시인의 작품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도연명은 심양 골짜기로 관직을 반납하고 떠났으며(淵明歸去 陽曲) 후대 사람들은 그것이 부러워 그림으로까지 묘사했고(後人慕之寫爲圖) 약하지만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빛이 밝혀주는 앞길에 영원성을 부여했음(晨光熹微前路永)을 생각하게 한다.
시인은 진나라의 갑자를 쓴다는 것이 괴로웠던 모양이다. 눈앞을 문득 바라보니 옮겨지는 산하는 예와 다름이 없었는데 진나라의 갑자를 쓰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음을 내비친다. 몸담았던 나라의 연호를 하루아침에 버리는 일을 달갑지 않았으렷다.
화자는 이제 긍정적인 자기만족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높은 의리가 하늘에까지 닿았을 뿐인가라고 하면서 충성과 의분이 바로 가을바람에 비길 만하다고 했다. 긍정적인 자기만족이다. 이어진 네 번째 구에서는 [이 처사, 이 절개 홀로 높아 어찌하나 / 당시 조정에 호준들도 많구나 // 내 이제 그림을 만지면서 거듭 탄식하니 / 청풍이 삽삽하게 불어 귀밑머리를 날린다]면서 딴전으로 돌리는 모습을 본다.
※한자와 어구
眼中: 눈 앞. 忽見: 홀연히 보다. 山河移: 산하로 옮기다. 書晉: 진서. 진나라의 글. 甲子: 갑자. 寸心勞: 쓰는 마음이 괴롭다. // 豈但: 어찌 다만. 高義: 의리가 높다. 凌: 능멸하다. 天衢: 하늘을 두려워하다. 忠憤: 충성과 의분. 直: 바로. 與秋雲俱: 가을 구름과 비길 만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