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밝고 부드럽게 노 젓는 소리 꿈속 소리 같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75)

2020년 07월 07일(화) 18:11

마음이 답답할 때 바람을 쏘인다. 가슴이 막할 때 강변을 거닐거나 강둑을 거닐게 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물결의 다소곳한 정취에 취하면서 들뜬 마음을 다소 안정시켜 준다. 마음이 답답할 때 산에 오르는 심정도 마찬가지다. 노 젓는 즐거움이 한결 마음 흥분시켜서 저 멀리서 은은하게 들리는 노랫가락의 흥취를 더하게 된단다. 갈대 잎이 조각조각 이슬에 가득 차고 있고, 봉 옥에는 가을바람이 한밤 내내 일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江行(강행) / 농암 김창협
갈대 잎 조각조각 이슬에 가득 차고
봉옥에 가을바람 한밤 내내 이는데
맑은 강 노 젓는 소리 꿈속의 소리 같네.
蒹葭片片露華盈 蓬屋秋風一夜生
겸가편편로화영 봉옥추풍일야생
臥遡淸江三千里 月明柔櫓夢中聲
와소청강삼천리 월명유노몽중성


달은 밝고 부드럽게 노 젓는 소리 꿈속 소리 같네(江行)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다른 호는 삼주(三洲)다. 증조부는 좌의정 김상헌, 조부는 동지중추부사 김광찬,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이고, 어머니는 해주목사 나성두의 딸로 알려지며 영의정 김창집의 동생이기도 하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갈대 잎 조각조각 이슬에 가득 차 있고 / 봉옥에는 가을바람 한밤 내내 일고 있네 // 누워서 맑은 강 삼십 리 거슬러 올라가니 / 달은 밝고 부드럽게 노 젓는 소리 꿈속의 소리 같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강가를 걷고 있노라니]로 번역된다. 마음이 적적할 때 강변을 찾아 걷다보면 한결 위안이 되는 수가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물은 희망을 안겨다 주고, 강가에 출렁거리는 파도는 희망으로 안기면서 손짓을 하기도 한다. 갈매기 떼가 날다가 ‘까-옥’하면서 슬쩍 던지는 무언의 대화는 울적한 마음으로 달래도 준다.

시인은 강가를 거닐 때마다 이와 같은 마음을 다잡아 시상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갈대 잎이 조각조각 살포시 내려서 이슬에 가득 차고 봉옥에는 산들거리는 가을바람이 한밤 내내 일고 있다는 시상의 밑그림을 채우고 있다. ‘봉옥’이란 자주 쓰이지 않는 말이다. 직역하면 ‘쑥 집’이란 생소한 말이겠는데, 여기에서 그대로 쑥 잎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화자는 꾀나 먼 거리를 걸었던 모양이다. 왕복하면 24㎞의 거리였겠는데 걷기 치고는 꾀나 걸리는 거리다. 누워서 손짓이라도 하듯이 맑게만 흐른 강 삼십 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데, 달은 밝고 부드럽게 사공이 노 젓는 소리는 꿈속의 소리 같다는 한 줌 시상을 일구어 냈다. 강이 반듯하게 누워서 질펀하게 흐른다는 시상의 멋이다.

※한자와 어구
蒹葭: 갈대 잎. 片片: 조각조각. 露華盈: 이슬이 화려하게 가득 차다. 蓬屋: 봉옥(쑥 집). 秋風: 가을바람. 一夜生: 한 밤 내내 일다. // 臥: 눕다. 遡淸江: 맑은 강에서 놀다. 三千里: 삼천리. 月明: 달이 밝다. 柔櫓: 부드럽게 노를 젓다. 夢中聲: 꿈속의 소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