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이 기회가 되려면 최형천 (주)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2020년 07월 12일(일) 18:06

이번 달에 출판된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라는 새 책은 앞뒤가 없습니다. 통상의 편집방식을 뒤집어 앞뒤의 양 방향에서 시작되는 책입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일상의 전복’을 책의 디자인에 적용하였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입니다. 팬데믹과 더불어 우린 오랜 세월 익숙했던 삶의 방식과 결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독특한 디자인 의도는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독자들이 삶에 대한 통찰을 잊지 않도록 응원하려는 취지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자리와 소득의 위기로 개인과 가족의 생존이 위협받고 일상의 평온이 깨져버렸습니다. 또한 이런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사회적, 국제적 위기로 까지 확산되어 세계인들은 공포 떨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염병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이 전망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석학과 많은 연구기관에서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전망과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선 시급한 것은 당장 위기에 직면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촘촘하게 설계하여 단 한 가족이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노년층이 당국의 자제권유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방문판매업체 활동에 가담하여 감염되고 전파자가 된 것은 당장 생존에 대한 위협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합리적 추론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계에 있는 분들을 위한 정부의 선제적 구제가 결국 전염병 확산을 막는 ‘경제적 거리두기’가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위기 이후의 세계에 대한 전망을 세우는 것입니다. 세계경제는 코로나19 위기 이전에도 빈부격차는 전례 없이 커져갔고, 경제성장은 동력을 잃고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또한 미래설계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예측을 추종하기 보다는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주도적 사고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럼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짚고 가야 할 사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이대로는 아니다’는 것입니다. 최근 일련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세계경제가 추락하고 암울한 데도 세계주식시장은 널뛰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부동산도 역대 최고의 상승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실물경제와 정반대로 이렇게 과열되는 것은 정상이라 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의 근간마저 뒤흔드는 상황입니다. 시장자본주의의 성과와 문제점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시장은 결코 평등한 공간이 아니며 윤리의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무한 욕망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시장경제가 우리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삶을 분쇄하는 ‘악마의 맷돌’이 될 거라고 예측하며, 시장경제의 대안으로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추구하고 정의를 지향하는 경제체제를 제시하였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안고 있는 적폐를 정리해야 합니다. 한국은 세계가 놀랄만한 압축 성장을 이루었지만 반면에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장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고 산재 사망률도 1위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경제적 불평등도 미국 다음으로 극심하며, 자살률은 가장 높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성장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거라는 확신, 또한 성장이 무한히 지속될 거라는 믿음은 맹목적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간 우리가 신봉했던 노선을 재검토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노정된 모순들을 정리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셋째로 각자도생은 아닙니다. 세계화 이후 세계질서는 강자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들은 외면되었으며, 오로지 소수의 강자에 의해 인류의 존재조건이 규정되었습니다. 이젠 위기에 직면하고도 국가는 국가별로, 시민들은 개개인별로 나만이라도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힘들수록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그런 인간애는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인류의 미래는 요원합니다. 이제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소유나 소비보다는 연대와 신뢰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역사의 분기점에 선 인류에게 새로운 질서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함께하는 새로운 정치와 경제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전 세기가 자유의 확장에 기여했다면 새로운 세기는 평등이 키워드가 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21세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