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 노파로 변한 신발 - 수필 김경순 |
| 2020년 07월 20일(월) 1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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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의미 없는 꿈은 없다고 하였다. 꿈은 무의식을 대리하는 상징성이며, 그 꿈의 원천은 ‘최근에 벌어진 사소한 일, 어릴 적 경험, 신체적 욕구라 했다. 그는 꿈을, 경험하거나 기억하는 것으로 ‘꿈의 내용’에 속하는 현재몽과 꿈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무의식의 의미를 뜻하는 ‘꿈의 사고’로 불리는 잠재몽으로 나눴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어디에 속할까. 현재몽으로 신체적 욕구에 포함될 것 같다. 신발 꿈을 꾸기 전에는 실내에서 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실내에서도 신을 신게 된 것은 발바닥의 염증으로 딱딱한 곳을 디디면 통증이 더 심해지면서였다. 궁리 끝에 바닥이 도톰하고 폭신한 실내화를 마련하였다. 그것은 통증 완화 외에도 겨울날 외출에서 돌아와 신으면 바닥의 냉기를 차단하고, 실수로 물을 엎질렀거나, 물걸레청소를 할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집 안팎에서 신을 필요로 하는 발은, 꿈을 통해 나에게 무언가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다. 나는 꿈에 신발을 찾아 헤매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무렵이었다.
들쑥날쑥한 냇가와 물속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발바닥이 아파서 주저앉고 싶었다. 그때야 신발을 벗어놓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신발을 찾으러 가는데 지나왔던 길이 이상했다. 맑았던 물은 흙탕물로 바뀌고, 길은 겨우 발 디딜 정도로 좁아져 있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쏟으면서 발길을 옮겼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기진맥진상태였다. 신을 벗어 놓았던 자리에는 손가락으로 건들기만 해도 넘어질 것 같은 노파가 허리를 굽힌 채 앉아 있었다. 신을 보았느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다. 그 주변에서 신발을 찾다가 눈을 떴다.
그 노파는 나의 신발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내가 신었던 신들을 뭉쳐놓으면 노파와 비슷한 모양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그 노파가 바로 나의 지나온 발의 모습이 되어 다가왔다. 발은 만신창이가 되어 쉬고 싶은데, 주인은 활동이 왕성했던 시절만 떠올리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 꿈을 자주 꾸던 어느 날에는, 신발이 청년 시절의 나를 찾아주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주말마다 홀로 명승지를 찾아다녔다. 검문 나온 순경이 여관 주인에게 혹시 사고 낼지 모르니 잘 살펴보라 당부하여 커피나 과일 등을 갖고 드나드는 통에 잠을 설친 적도 있었고, 강화도 마니산을 오를 때는 한 남자가 따라와서, 걸음을 빨리하여 그를 떨쳐 낼 정도로 활기에 넘쳤다. 그런 나날을 접고 살아온 지 사십여 년, 발은 그 시절의 나를 찾아주고 싶어 신발을 잃고 찾는 꿈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행을 다니지 않은 건 아니었다. 친구들과 또는 친한 부부끼리, 승용차나 봉고로 한가할 때면 열흘 이상을 외지에서 머문 적도 더러 있었다. 누군가의 승용차로 다니던 것이, 나이 들자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러자 막내가 가끔 불러서 둘만의 여행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산과 들을 수시로 찾아다녔던 내 발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뭔가 허전한 나날이 계속 되더니 어린 날의 고향이 그립고, 그곳에 있는 학교에도 가보고 싶었다. 혼자 다니던 시절을 잊고 있던 나를, 신발은 꿈을 통해 알려왔다. 버스로 혼자 다녀도 된다는 깨침이 있을 때까지, 발은 잃어버린 신발 꿈으로 나의 가슴 깊이에서 잠자던 그 시절을 불러낸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과 그 소망의 성취를 통해서 사람의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통일된 고리를 이룬다’고 하지 않았던가.
잃어버린 신발. 내 젊은 날의 나로 돌아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나 홀로 주말마다 다니다시피 했던 그 때처럼,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신발을 찾아 떠나야겠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 현재의 상태로는 무리라는 것을 노파로 변한 신발을 통해 깨닫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거칠 것 없이 산야를 누비는 일도 젊은 날의 특권일 터. 이제 힘이 부치는 시절에 접어들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나댔던 발을 곱게 가꾸는 거로 보상을 해줘야할까. 꽃신은 아니라도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나서는 일이 없도록.
김경순 약력
▶2001년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2010년 ‘문학예술’ 시 신인상 등단
▶한국문협 27대 대외협력위원회 위원
▶국제PEN클럽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광주여류수필·징검다리수필문학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