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나 국그릇에 벌레가 빠질까봐 걱정하며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80)

2020년 08월 11일(화) 16:53

送申使君之任漣川(송신사군지임연천) / 혜환재 이용휴
개 두 마리 앞세우고 시골 간 아낙네가
머리에 인 고리짝엔 점심 참 담았는데
행여나 벌레 빠질까 살짝 덮고 걷고 있네.
村婦從兩犬 栲栳盛午饁
촌부종양견 고로성오엽
或恐蟲投羹 覆之以瓠葉
혹공충투갱 복지이호엽

시적 상관자인 신광수는 ‘시조’(時調)란 말을 처음 썼다. 관서악부 제15수에서는 [처음에 부른 창은 양귀비를 부른 장한가인데(初唱聞皆說太眞) / 지금도 마외역에 남은 한을 슬퍼하네(至今如恨馬嵬塵) // 일반 시조에 장단을 붙인 이는(一般時調排長短) / 장안에서 온 이세춘이었네(來自長安李世春)]라고 지목하는 슬기를 보였다. 개 두 마리를 앞세우고 간 시골 아낙네가 있었는데, 고리짝엔 점심이라는 ‘참을 가득 담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행여나 국그릇에 벌레가 빠질까봐 걱정하며’(送申使君之任漣川)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혜환재(惠寰齋) 이용휴(李用休·1708-1782)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실학자다. 벼슬에 나가기 위해서 서울로 거처를 옮겨 서울과 안산을 오가며 평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노론의 집권으로 벼슬길에 나갈 수 없도록 꽉 막혀 버렸다. 평생 벼슬 없이 살았던 것도 당쟁 때문이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개 두 마리를 앞세우고 간 시골 아낙네 있었는데 / (머리에 인) 고리짝엔 점심 참 가득 담았네 // 행여나 국그릇에 벌레가 빠질까봐 걱정하며 / 호박잎으로 살짝 덮어 두어 걷고 있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연천으로 부임하는 벗 신광수를 보내며]로 번역된다. 위 시는 경기도 연천군수로 부임해 가는 벗 신광수(申光洙)를 위해 지어 보낸 시다. 여느 송시하고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작품이다. 평범한 송시라면 목민관의 자세와 임무를 써야함에도 이 시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뼛속 깊은 진리가 숨어 있다.

시인은 조심스럽게 걷는 여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개 두 마리를 앞세우고 간 시골 아낙네가 머리에 인 고리짝엔 점심 참 가득 담았다는 평범한 시상이다. 시인은 벗에게 선정을 베풀 것을 당부하는 대신에 남편이 들밥으로 먹어야 할 국물에 행여 벌레가 빠질세라 호박잎으로 국그릇을 덮은 아낙의 실상을 보인다.

화자는 행여나 국그릇에 벌레가 빠질까 조심스런 마음으로 호박잎으로 살짝 덮어둬 걷고 있다는 가상적인 시상 주머니를 털어낸다. 화자는 조심스런 아낙의 심정으로 진심과 진정을 다해 백성을 섬길 것을 우회적으로 전한다. 우리 선인들의 잔잔한 문학적인 표현의 방법이 이렇게 은근과 끈기 속에 진실이 묻어있음을 참하게 만난다.

※한자와 어구
村婦: 시골 아주머니. 從: 따라 가다. 兩犬: 개 두 마리. 栲栳: 고리짝. 점심을 담는 도구. 盛午饁: 점 심 밥을 가득 담다. // 或恐: 혹시나 두려워하다. 蟲投: 벌레가 빠지다. 羹: 국 그릇. 覆之: 그것(국그릇)을 덮다. 以: ~으로. ~을 갖고. 瓠葉: 호박잎.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