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전선 철길따라 문학은 흐르고…]5. 벌교역과 소설 태백산맥 민족의 아픔이 문학으로 승화된 역사의 현장 박준수 기자(시인) |
| 2020년 08월 20일(목)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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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득량, 예당, 조성을 거쳐 1시간30분을 달려 벌교역에 다다른다. 벌교는 철길과 바다가 맞닿는 곳으로 일제에 의해 개발된 포구이다. 여수·순천과 목포를 잇는 지리적 거점이어서 경제적 이용가치가 컸던 탓이다.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쌀과 수산물을 이곳에 집하시켜 배로 일본으로 가져갔던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이러한 지리적 입지 때문에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이 질펀하게 흐르는 땅이 벌교이다. 일제는 남해안 일대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 누에, 면화 등 이른바 ‘3백(白)’ 물산을 이곳에 집하해서 일본 본토로 실어 날랐다. 그래서 벌교는 사람과 돈이 몰려드는 상업도시로 발전해 한동안 융성기를 보냈다. 지금도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건물들이 남아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벌교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 곳으로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태백산맥문학관을 비롯 현부자네집, 철다리와 소화다리, 홍교, 보성여관, 금융조합건물 등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공간, 여순사건,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작품속 이야기의 생생한 현장을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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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에 도착해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향했다. 읍내상가를 지나 부용교를 건너 벌교상고를 경유해 언덕에 둥지를 틀고 있는 문학관에 다다랐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입구에 주차장이 새로 만들어져 한결 훤해진 느낌이 들었다. 분단현실을 작가의 역사인식과 치밀한 현장취재를 통해 10권의 대하소설로 집대성한 ‘태백산맥’을 기리는 문학관은 문학기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4년간의 취재와 6년간의 집필과정을 통해 탄생한 태백산맥은 1천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할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작이다.
태백산맥문학관과 현부자네집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철다리 건널목에서 기차가 오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순천을 출발해 광주송정을 가는 열차가 오후 뜨거운 햇살 아래 우렁찬 쇠바퀴소리를 내며 철교를 지나갔다. 이 철다리는 소설에서 염상구의 면모를 가장 극적으로 부각시켜 주는 장소이다. 이 철다리 위에서 그는 장터거리 주도권을 놓고 깡패 왕초 ‘땅벌’과 담력 대결을 벌인다.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다가 바다로 뛰어내리는가 하는 시합이다.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 위에 서 있었다. 기차가 “뙈액~”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그 순간 기차와 그들과의 거리는 교각 네 개의 간격으로 좁혀졌다.”(태백산맥 1권 188쪽)
기차가 지나간 후 필자는 철다리 철로 위를 걸으며 염상구가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해봤다. 멀리 벌교만을 바라보니 바닷물이 하늘과 맞닿아 지평선을 이루며 푸른 생명의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다.
소화다리를 건너 태백산맥 문학거리로 향했다. 먼저 보성여관에 들렀다. 일본식 여관인 이 건물은 오랫동안 상점으로 이용되다 문화재청이 구입해 새롭게 보수해 지금은 문화재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전시실과 공연장, 카페는 물론 다다미방에서 숙박까지 가능해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점이 돋보였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전시실을 둘러보며 벌교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곳이지만, 공교롭게도 이날은 문을 열지 않아 아쉬웠다. 보성여관 앞에서 마스크를 쓴 여학생 서너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충북 제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방학을 맞아 벌교에 여행왔다고 말했다.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강 줄거리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이 일본인이 운영하던 여관이었다고 설명하자 가장 자신있는 과목이 역사라면서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왔다며 눈빛을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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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여관 맞은편에 자리한 술도가집은 소설 속 지식인 청년 정하섭의 본가이자 소화와 애절한 인연을 맺었던 공간으로 복원을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지난 2월 방문했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진척이 없어 무슨 속사정이 있나 궁금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일제강점기 금융조합 건물에 들러 근대 벌교의 경제적 현황을 살펴봤다. 일제강점기 그늘진 역사 속에 잉태된 많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지금은 보성여관과 금융조합 건물만이 남아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지친 다리를 쉴 겸해서 주변 커피숍에 들어가 시원한 커피를 시켜놓고 가져간 수필집 ‘징검다리 수필’ 제18집을 펼쳤다. 목차를 살펴보니 평소 안면이 있는 작가분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개중에 제목이 마음에 가는 작품을 몇 편 읽어보니 인생의 연륜이 느껴지는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다. 애틋하고 가슴이 찡하고 해학이 넘치는 글들을 읽으며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남아 전통시장을 구경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도로를 따라 할머니들이 노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시장 안에는 평소 보기 쉽지 않은 갖가지 약재와 농산물, 해산물이 푸짐해 눈길을 끈다. 한 켠에 소라와 게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미처 팔지 못한 소라를 떨이채 샀다.
남녘 들판도 점차 어둠으로 물들고 오늘 하루 여행길이 꿈인 듯 아련하다. 여관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니 기차바퀴의 덜컹거림과 기적소리가 마음속에 잔잔히 파문짓는다.
열차는 곧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했고 차창 밖으로 8월의 녹음이 펼쳐졌다. 열차는 산과 들판과 강을 따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옛 추억의 철로를 힘차게 질주했다. 나무들은 차창 가까이 다가와 푸른 잎들을 흔들며 반겨줬다. 경전선은 산길을 따라 건설되어 마치 숲속을 달리듯 풋풋하고 싱그러운 느낌을 준다. 간혹 철로에 의해 감춰진 내밀한 공간이 ‘비밀정원’처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잔디가 잘 다듬어진 묘지, 옛 토담집들, 누군가의 손길로 가꿔진 손바닥만한 논밭이 정겹다. 그리고 앙증맞은 방죽, 외딴집 등이 동화속 풍경처럼 호기심을 자아낸다. 한참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건널목 신호등이 깜박거린다.
기차는 득량, 예당, 조성을 거쳐 1시간30분을 달려 벌교역에 다다른다. 벌교는 철길과 바다가 맞닿는 곳으로 일제에 의해 개발된 포구이다. 여수·순천과 목포를 잇는 지리적 거점이어서 경제적 이용가치가 컸던 탓이다.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쌀과 수산물을 이곳에 집하시켜 배로 일본으로 가져갔던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이러한 지리적 입지 때문에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이 질펀하게 흐르는 땅이 벌교이다. 일제는 남해안 일대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 누에, 면화 등 이른바 ‘3백(白)’ 물산을 이곳에 집하해서 일본 본토로 실어 날랐다. 그래서 벌교는 사람과 돈이 몰려드는 상업도시로 발전해 한동안 융성기를 보냈다. 지금도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건물들이 남아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벌교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 곳으로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태백산맥문학관을 비롯 현부자네집, 철다리와 소화다리, 홍교, 보성여관, 금융조합건물 등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공간, 여순사건,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작품속 이야기의 생생한 현장을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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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에 도착해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향했다. 읍내상가를 지나 부용교를 건너 벌교상고를 경유해 언덕에 둥지를 틀고 있는 문학관에 다다랐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입구에 주차장이 새로 만들어져 한결 훤해진 느낌이 들었다. 분단현실을 작가의 역사인식과 치밀한 현장취재를 통해 10권의 대하소설로 집대성한 ‘태백산맥’을 기리는 문학관은 문학기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4년간의 취재와 6년간의 집필과정을 통해 탄생한 태백산맥은 1천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할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작이다.
태백산맥문학관과 현부자네집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철다리 건널목에서 기차가 오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순천을 출발해 광주송정을 가는 열차가 오후 뜨거운 햇살 아래 우렁찬 쇠바퀴소리를 내며 철교를 지나갔다. 이 철다리는 소설에서 염상구의 면모를 가장 극적으로 부각시켜 주는 장소이다. 이 철다리 위에서 그는 장터거리 주도권을 놓고 깡패 왕초 ‘땅벌’과 담력 대결을 벌인다.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다가 바다로 뛰어내리는가 하는 시합이다.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 위에 서 있었다. 기차가 “뙈액~”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그 순간 기차와 그들과의 거리는 교각 네 개의 간격으로 좁혀졌다.”(태백산맥 1권 188쪽)
기차가 지나간 후 필자는 철다리 철로 위를 걸으며 염상구가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해봤다. 멀리 벌교만을 바라보니 바닷물이 하늘과 맞닿아 지평선을 이루며 푸른 생명의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다.
소화다리를 건너 태백산맥 문학거리로 향했다. 먼저 보성여관에 들렀다. 일본식 여관인 이 건물은 오랫동안 상점으로 이용되다 문화재청이 구입해 새롭게 보수해 지금은 문화재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전시실과 공연장, 카페는 물론 다다미방에서 숙박까지 가능해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점이 돋보였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전시실을 둘러보며 벌교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곳이지만, 공교롭게도 이날은 문을 열지 않아 아쉬웠다. 보성여관 앞에서 마스크를 쓴 여학생 서너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충북 제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방학을 맞아 벌교에 여행왔다고 말했다.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강 줄거리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이 일본인이 운영하던 여관이었다고 설명하자 가장 자신있는 과목이 역사라면서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왔다며 눈빛을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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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여관 맞은편에 자리한 술도가집은 소설 속 지식인 청년 정하섭의 본가이자 소화와 애절한 인연을 맺었던 공간으로 복원을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지난 2월 방문했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진척이 없어 무슨 속사정이 있나 궁금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일제강점기 금융조합 건물에 들러 근대 벌교의 경제적 현황을 살펴봤다. 일제강점기 그늘진 역사 속에 잉태된 많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지금은 보성여관과 금융조합 건물만이 남아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지친 다리를 쉴 겸해서 주변 커피숍에 들어가 시원한 커피를 시켜놓고 가져간 수필집 ‘징검다리 수필’ 제18집을 펼쳤다. 목차를 살펴보니 평소 안면이 있는 작가분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개중에 제목이 마음에 가는 작품을 몇 편 읽어보니 인생의 연륜이 느껴지는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다. 애틋하고 가슴이 찡하고 해학이 넘치는 글들을 읽으며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남아 전통시장을 구경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도로를 따라 할머니들이 노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시장 안에는 평소 보기 쉽지 않은 갖가지 약재와 농산물, 해산물이 푸짐해 눈길을 끈다. 한 켠에 소라와 게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미처 팔지 못한 소라를 떨이채 샀다.
남녘 들판도 점차 어둠으로 물들고 오늘 하루 여행길이 꿈인 듯 아련하다. 여관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니 기차바퀴의 덜컹거림과 기적소리가 마음속에 잔잔히 파문짓는다.
-경전선에 깃든 민초들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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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시인의 ‘예당기행’ 쓸쓸함이 엄습
기차는 춥고 가난한 시절 우리 곁에 존재
이번 ‘경전선 철길 따라 문학은 흐르고’ 시리즈를 써보기로 결심한 계기는 한 편의 시 때문이다.
바로 이수인 시인의 ‘예당기행’(199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시를 처음 접한 순간,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기차에 오르며/멀리 흰종이꽃 눈물처럼 달고 가는/아침 상여를 보았다./아직 길 떠나기에는 이른 새벽,/서둘러 길을 나선 저 설운 생애는/또 무엇이 되려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린 시절 목격했던 흰 상여꽃이 떠오르며 마치 내가 상여를 탄 망자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허무하고 쓸쓸함이 엄습했다. 여행길에 나선 나그네의 심정치고는 너무나 비장해서 가시처럼 마음을 찔렀다. 어이하여 시적 화자는 세상과 작별하는 상여를 슬픈 시선으로 포착하게 됐을까?
새벽 기차에 서둘러 몸을 실은 그의 처지가 아득히 멀어지는 상여와 소실점을 이루며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다. 이어 그리스의 성악가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부른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란 노래가 생각났다.
이처럼 기차의 이미지는 낯선 세계로 향하는 흥분과 낭만을 내포하면서도 때로는 이별과 상실을 품고 있다.
그것은 기차가 춥고 가난한 보릿고개 시절에 우리 곁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경전선은 애잔한 전라도의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더욱 애틋하다. 1930년 일제강점기 경전선 철길이 놓이면서 전라도 사람들은 더욱 피폐해져갔다. 남도 들녘에서 농민들이 피땀 흘려 가꾼 쌀과 목화 등 농산물들이 이 철길을 통해 벌교와 여수항을 거쳐 일본으로 실려갔다. 해방이 된 후에는 6·25전쟁 피란의 행렬이, 산업화 시대에는 10대 소녀·소년들이 호미와 지게를 버리고 열차를 타고 정든 고향을 떠났다.
그래서 누군가는 기차역을 유랑의 길목으로 표현한 바 있다. 남도 들판 가운데 외딴집처럼 박혀 있는 간이역은 밭일 나간 어머니를 혼자서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처럼 허허롭다. 세월의 뒤안길을 스쳐가는 경전선 철길 옆에는 수많은 시와 문학작품들이 들꽃처럼 피어 마음을 흔든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예당역은 경전선의 쇠퇴한 현주소를 가장 실감나게 보여줬다.
시 작품에서는 역을 의지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까이 포착되고 있으나 20여년이 흐른 지금은 마른 풀잎처럼 시들어 있다.
한때 번성했을 역전 앞 상가는 슬럼가처럼 적막하기 그지 없었다. 다방, 식당, 모텔들이 즐비하게 간판을 앞세우고 서 있지만 대부분 폐업한 상태로 인적이 끊겨 있었다.
/박준수 기자(시인)
예당기행 - 이수인-
기차에 오르며
멀리 흰종이꽃 눈물처럼 달고 가는
아침 상여를 보았다.
아직 길 떠나기에는 이른 새벽,
서둘러 길을 나선 저 설운 생애는
또 무엇이 되려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강물처럼 출렁이는 기차,
기차처럼 흔들리는 강물에
늦가을 마른 풀잎같은 나를 싣고 예당 가는 길
남평, 앵남, 능주 그리고 석정, 이양…
들꽃 이름을 닮은 마을들을 스쳐
덩치 큰 미루나무 줄지어 선 보성을 지나
예당에 이르면
빗장 풀고 그리움들 확 쏟아져
흐린 안개되어 길을 막는다, …
기차는
철길을 놓으며 떠나고
말없이 먼 길 따라오던 산맥들 바라보며
나는 문득,
산 같고 강물 같던 그 사내,
찔레꽃처럼 수줍고 아린
스무살 어귀의 내 첫사랑을 생각했다
그리움은 언제나
제 가슴 태우며 번지는 들불처럼
먼 길 떠나와 이젠 아득해져 버린 벌판 위에
나를 혼자 세워두곤 하고,
키 작은 옥수수밭 지나
찬찬히 길 내어주며 이루는 숲 위로
소쩍새며 뻐꾸기들
손풍금 소리처럼 쓸쓸하게 울며 날아가는데,
지독한 안개로도 다 지우지 못한 지나간 시간들
나는 작은 배에 실어 떠나보낸다.
(199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준수 기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