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은 해마다 달라지나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82)

2020년 08월 25일(화) 18:48

元朝對境(원조대경)
연암 박지원

하얀 수염 두 서너 줄기 더해만 가고
내 몸은 육척의 키 더해가지 못하는데
해마다 달라진 얼굴 금년에는 변함없고.
忽然添得數莖鬚 全不加長六尺軀
홀연첨득수경수 전불가장육척구
鏡裏顔容隨歲異 稚心猶自去年吾
경리안용수세이 치심유자거년오

사람이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돌아오면 늙어감을 두렵게 생각한다. 정신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희미해지면서 피부로 느껴진다. 늙어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거울을 보면서 흰 머리카락에서부터다. 다음은 주름살이 늘어난 얼굴의 모습에서 이런 감정을 받게 된다. 현대인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선현들도 같았다. ‘홀연히 흰 수염 두서너 줄기 더해만 가는데, 내 몸은 육척의 키를 더해가지 못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은 해마다 달라지나’(元朝對境)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홍국영이 세도를 잡아 벽파에 속했던 그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됐다. 결국 황해도 금천 연암협으로 은거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쓰인 아호가 ‘연암’(燕巖)으로 불린 것도 이에 연유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홀연히 흰 수염 두서너 줄기 더해만 가는데 / 내 몸은 육척의 키를 더해가지 못하구먼 //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은 해마다 달라지나 / 어릴 때 마음은 작년의 나와 금년의 나는 변함없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설날 아침 거울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옛날에는 요즈음으로 말하면 ‘설날’을 ‘원조’(元朝) 혹은 ‘원일’(元日)이라고 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면서 정월 초하루인 이 날을 뜻 깊게 생각했다.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어른께 세배도 드리고 조상님 산소도 찾아 성묘도 하는 풍습이다. 뿐만 아니라 한 해의 무사안녕과 소원을 빌기도 했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도 지금과 같이 변함없이 그런 풍습이었으리. 그렇지만 시인은 거울을 보면서 다른 시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어이한 흰 수염 두서너 줄기 더해만 가지만, 내 몸은 육척의 키를 더해가지 못하다는 시상을 보인다. 수염은 길어지지만, 몸은 그렇지 못하’다는 시상이다. 수염과 몸의 대비 현상이다.


화자는 전구에서 시상의 대비의 뜻을 밝히더니만, 후구에서도 그런 대비를 밝히고 있다. 거울 속의 얼굴과 어릴 때나 지금의 마음의 대비법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은 해마다 달라지지만, 어릴 때 마음은 작년의 나와 금년인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시상이다. 시상의 비유법보다는 대비법을 능란하게 구사했다는 느낌을 받는 시다.

※한자와 어구

元朝: 정월 초하룻날 아침, 忽然: 갑자기. 添得: 더하다. 數莖鬚: 몇 가락의 수염, 全: 모두. 不加長: 더 길지 않다. 六尺軀: 육척의 몸. // 鏡裏: 거울 속. 顔容: 얼굴. 隨歲異: 해마다 다르다. 稚心: 어린 마음. 猶自: 스스로 같다. 저절로 같다. 去年吾: 거년의 나.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