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로소 깨달았네, 사람 늙으면 꽃만 같지 못하니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85) |
| 2020년 09월 15일(화) 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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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같아 선가 금년 꽃 그저 좋네
지난해 그 사람은 금년 와서 늙었구려
사람은 가석한 낙화니 더는 쓸지 마시오.
今年花似去年好 去年人到今年老
금년화사거년호 거년인도금년노
始知人老不如花 可惜落花君莫掃
시지인노부여화 가석낙화군막소
낙화를 보면서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 낙화를 인생에 비유하면 피었다가 시드는 한 송이 꽃일 뿐이라 한다. 한 송이 작은 꽃을 피우기 위해 1년 동안 인고의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진 바람과 서리와 눈까지 견뎌 냈다. 물이 부족했을 때는 목이 말라 애태웠고, 햇볕이 부족해 몸부림을 치기도 했었다. ‘금년 꽃은 지난해와 같아서 좋기만 한데, 지난해의 사람은 금년에 와서 너무 많이 늙었다’고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비로소 깨달았네, 사람이 늙으면 꽃만 같지 못하니’(落花)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1741-1793)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1778년 심염조의 서장관으로 연경에 가서 기균, 이조원, 이정원, 육비, 엄성 등 청나라 석학들과 교류했다. 중국의 산천·도리·궁실·누대·초목·충어·조수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해 왔던 자상함을 보여 크게 이바지했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금년 꽃은 지난해와 같아서 좋은데 / 지난해의 사람은 금년 와서 늙었구나 / 비로소 깨달았네, 사람이 늙으면 꽃만 같이 못함이니 // 가석한 낙화로다 그대여 부디 쓸어버리지 마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꽃이 떨어짐 보고 온갖 정을 담으면서]로 번역된다. 꽃이 떨어짐을 보면서 인생이 쉽게 지남을 비유했다면 비유적 착상은 서정성의 농도가 깊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총명하던 정신은 금방 흐리멍텅해지고, 세월은 귓가에 쌩~ 하는 소리를 남기고 지나간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잠깐 왔다 가는 세상이 그나마 멍청하게 넋을 놓고 지나쳐 버린다면 애석하지 않으랴.
이와 같은 시심을 부여잡은 시인은 금년에 핀 꽃은 지난해와 같아서 좋았는데, 지난해의 사람은 금년에 와서 늙었음을 회고한다. 매년 같이 핀 꽃은 좋지만 사람이 늙어 감은 그렇지 않다는 시상의 한 가닥이다.
화자는 이제야 알게 됨에 따라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이 늙으면 꽃만 같이 못함을 볼 때 가석한 낙화로구나, 그대여 꽃을 쓸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낙화의 안타까움을 그대로 말하고 있다. 다시 이어진 덕담 한 마디는 더 진하다. 나이 들어 정신의 긴장이 풀어지면 더디 가는 시간이지만, 젊은 날의 시간은 고밀도의 농축이다. 젊은 날의 시간이 아깝고, 흐르는 세월은 여간 아쉽게 여긴다.
※한자와 어구
今年: 금년. 花: 꽃. 여기서는 금년에 핀 꽃. 似去年: 지난해와 같다. 好: 좋았다. 人: 사람. 到今年: 금년에 이르러서는. 금년에는. 老: 늙었다. // 始知: 비로소 알다. 人老: 사람이 늙다. 不如花: 꽃과 같지 않다. 可惜: 가히 애석하다. 落花: 꽃이 떨어지다. 君莫掃: 그대는 이제 쓸지 마시게.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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