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50년 전에는 그대처럼 스물 셋이었다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87)

2020년 10월 06일(화) 18:05

莫問郞年歲
(=贈卞僧愛·막문랑연세)
자하 신위

단장한 고운 눈썹 흰 모시 적삼에다
마음에 정성스레 재잘재잘 얘기하네
님이여 오십년 전엔 나도 스물 셋이었지.
澹掃蛾眉白苧衫 訴衷情話燕
담소아미백저삼 소충정화연니남
佳人莫問郞年歲 五十年前二十三
가인막문랑년세 오십년전이십삼


여성의 생각과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말한다. 황진이가 은사 서경덕을 사모했다가 실패한 일이랄지, 변승애라는 젊은 여인이 시인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다가 연정을 느끼면서 접근했던 일들이 이 들을 보여주는 실례리라. 계산상으로 자하의 73세, 젊은 여자 나이는 23세이었음이 시문 속에 훤히 보이는 차이가 난다. 그래서 ‘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은 입은 여인이, 마음 속 정을 정갈스럽게 재잘거리며 얘기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나도 50년 전에는 그대처럼 스물 셋이었다오’(莫問郞年歲)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로 조선 후기 문신이다. 조선은 시작이 가장 많았고 백년 이후 시인들도 그를 작시법 스승으로 추대했다. 천재적 시인으로 그 이름은 국내보다 중국에 알려졌고, 청조의 시풍을 받아들여 참신한 시를 썼다. 그의 시 작품 속에는 애국 애족적인 정신을 보인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은 입은 여인이 / 마음 속 정을 정갈스럽게 재잘거리며 얘기하네 // 님이여! 부디 내 나이를 더는 묻지마오 / 나도 오십년 전에는 그대처럼 스물 셋이었다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내 나이를 묻지 마오]로 번역된다. 원 작품명은 ‘증변승애’(贈卞僧愛)로 돼 있다. 신위의 학문과 풍류를 사모해 곁에서 모시면서 지필묵의 심부름이라도 하겠다는 ‘변승애’란 기녀에게 써줬다고 전해지기도 한 작품의 한 점이다.


시인 곁에 눈썹을 단정하게 그리고 흰 모시 적삼을 청결하게 갖춰 입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마치 제비가 지지배배 하는 것처럼 곁에 앉아 제 마음 속 품은 정을 쉴 새 없이 소곤거린다. 머리가 허연 시인은 애교 짙은 여인의 태도에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내 나이를 묻지 말라고 당부했고, 제 입으로 말해 놓고도 밀고 당기는 대화법이 재미있어 보였음을 알겠다.


화자는 ‘내 나이가 몇이냐 하면, 그러니까 50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고 은근한 추파와 같은 대답을 한다. 자신은 이미 늙었음을 핑계로 그녀의 사랑을 거절해 보인다. 화자는 이미 황혼의 늙은이요, 그녀는 한참 피어나는 꽃봉오리로 잠깐 대화의 욕심을 부린다. 이런 유머와 은근함 속에서 푸근함과 따뜻함을 보인 작품의 면모를 알게 한다. 작품 속의 은근함 속에서 함축미와 긴장감을 느끼는 분위기를 본다.

※한자와 어구

澹掃: 곱게 단장하다. 蛾眉: 여자의 눈썹. 白苧衫: 흰모시 적삼. 訴衷: 속마음을 하소연 한다. 情話: 마음에 있는 말. 燕 : 재잘거리며 이야기한다. // 佳人: 아름다운 여자여!(곧 변승애). 莫問: 묻지 말라. 郞年歲: 사나이 나이. 五十年前: 50년 전. 二十三: 23세.(곧 당시는 73세였음을 알게 함)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