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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복지담론을 기대하며

최형천
㈜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2020년 11월 01일(일) 18:20

최근 몇 년간 우리사회를 불안케 하는 요인은 4차산업혁명의 도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년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지구촌이 함께 혼돈에 빠져들었다.

선진국까지도 파탄지경인 모습에 문명사가들은 문명의 대전환기를 맞았다고 진단한다. 현실을 보아도 안정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까지 미루고 있다.

기업은 공장 자동화와 AI도입을 앞당기고 있다. 대중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경험해봤던 재택근무, 온라인교육, 인터넷구매의 편리함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런 변화가 가속화되면 소득양극화, 노령화, 일자리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처럼 큰 충격을 동시에 받으면서 분명해진 것은 저소득계층의 희생이 극심했으며, 빈부격차가 생존의 격차까지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러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걸 보면서 새로운 복지, 더 공평한 복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 하나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정기적으로 배분해 최소생활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얼마 전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기위해 매월 수백 달러씩의 국가지원이 필요하다며 기본소득을 지지하였다.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표방했던 미국사회가 이제는 사회적 합의로 평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정치권에서는 당연히 노선과 유불리에 따라 논쟁적으로 대응한다. 이거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복지 전문가나 관련자들의 완강한 거부는 의외였다. 문명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모든 것이 변화하는데 복지만은 과거의 기준에 맞춘 제도를 고수하겠다는 주장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도입의 여부를 떠나 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문명전환기에 우리가 고민해야할 점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복지도 제도보다는 철학을 논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가올 새로운 사회에서는 어떤 복지국가모델이 사회성원들에게 가장 적합할 것인가 대한 진지한 물음이 우선이며, 제도나 방법은 그 다음의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열린 자세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

우선 예견되는 미래상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미래에는 산업사회 방식으로 경제나 사회가 운영되지 않을 것이다. 산업사회 패러다임은 기업이 사업을 일으키고, 대다수 국민은 거기에 종사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해 임금을 받아 세금을 내고, 국가는 복지제도를 운용하면서 나라 전체가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업하는데 많은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선순환은 기대하기 어렵고, 지금의 복지시스템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코로나 팬데믹 같은 글로벌 전염병이 과거보다 더 빈번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미국의 과학저술가 피터 브래넌은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기후위기로 지금의 방식으로는 가까운 시기에 지구의 대멸종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이처럼 기후위기 또한 엄청난 변수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산업이 결합하고 거기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가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세계를 이끌어왔다.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 소비는 미덕으로 칭송됐고, 이런 연쇄가 돌아가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멈춰 선다고 위협했다. 이렇게 생산과 소비가 심화될수록 자연은 파괴되었고, 자연은 펜데믹으로 인간에게 되갚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런 생산-소비 가속의 문화가 바뀌어야 코로나19도 종식될 수 있다며, 삶의 방식을 완전하게 바꿔야 하는 대전환의 시기에 당도했다고 진단한다.(노자가 옳았다, 2020)

복지 논의에서도 이런 대전환의 기류가 고려된 새로운 관점의 담론이 절실하다. 우리가 경험한 세상이 수년 내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이 변화를 결정하는 요소가 너무나 다양하여 한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대전환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도 겸허하게 수용하여야 한다.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평화롭게 보살피는 보다 나은 방식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더 멀리 더 크게 보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세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