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뮤즈((Muse) 모딜리아니와 프리다 칼로의 뮤즈 뚜렷한 자아·빛나는 신념…예술인 영감의 원천 ‘뮤즈’

2020년 11월 04일(수) 18:03

사진 왼쪽부터 모딜리아니 作 ‘잔의 초상’, 프리다칼로 作 ‘부서진 기둥’, ‘테후아나 여인으로서의 초상’. <위키피디아 검색>

유명한 대가의 작품이 명화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작품이 가지는 매력 때문일 것인데, 일반 사람들이 대상을 보고 찾지 못하는 점을 발견해내는 화가의 능력과 이를 통해 창조된 작품이 사람들에게 큰 감흥을 전달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마치 예리하게 다듬어진 모서리를 보는 것처럼 잘 만들어진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감동을 전달해 준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담아야 하는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영감은 꼭 필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영감은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의 감성을 자극해주는 자극제일 것이기에 대상을 눈으로 보는 그대로만 건조하게 화폭에 표현한다면, 아마 그 그림은 얼마 못 가 매력을 잃고 질려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영감은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발현되는 것일까? ‘그녀는 나의 뮤즈(Muse)입니다. 그는 나의 뮤즈와 다름없습니다’라는 말은 예술가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굳이 사랑 이야기 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처럼, 상대로 인해 세상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때 영감은 발현되기 가장 적합한 타이밍이 되는 것이다.

화가들은 이처럼 자신의 삶에서 강렬하게 작용했던 사건이나 일들을 겪으며 감정에 변화를 겪게 되고 이 변화의 시기에 많은 영감을 얻고는 한다. 따라서 감정의 미묘한 작용이 일어나는 느낌이나 혹은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생각 등을 뜻하는 ‘영감’은 창조성의 집약체라 볼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 하겠다.

누군가의 뮤즈가 된다는 것, 상상만 해도 매력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화가들의 뮤즈에는 누가 있었을까? 그리고 소중한 순간들을 남긴 화가들의 그림에는 어떤 장면들이 담겨 있을까?

첫번째로 소개해볼 수 있는 작가는 ‘열정적인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와 그의 뮤즈 ‘잔’이다. 긴 목, 뾰족한 얼굴, 둥글고 처진 어깨 그리고 눈동자가 없는 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정도의 인물의 외형이다.

위의 작품 ‘잔의 초상’을 보아도 이런 특징이 여실히 녹아있는 것을 살필 수 있다. 게다가 오묘하고 독특한 그림체로 다른 작가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법을 보인 탓에 그의 작품은 매우 독창적이게 보인다.

어릴 적부터 병약했던 모딜리아니는 14살부터는 학교를 중퇴했고 17살 때는 폐 질환으로 어머니와 요양까지 떠나야 했다. 이때 그는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을 접할 기회를 가졌고 화가를 꿈꾸며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비록 그의 초기작은 다른 작가들과 비슷하게 평범했지만, 1906년 파리에 오며 접하게 된 당시 유행하던 아프리카 조각상의 영향을 받아 평면 작품이지만 마치 조각 같기도 한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으로 변형됐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릴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물화가 주를 이루는 그의 작품에는 유독 눈동자가 없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늘 고독과 불안에 시달렸던 모딜리아니가 사람에 대해 가졌던 ‘애착 혹은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밖에도 완성한 뒤에는 다시 그림을 고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모델을 통해 받은 영감을 활용해 그리고자 하는 포인트가 명확했다. 그는 오랜 관찰을 통해서 간결하고 정제되게 인물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했고, 그랬기에 풍경 대신 깊은 내면을 숨기고 있는 사람만이 그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수려한 외모로 수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당대 최고의 미남 화가 모딜리아니와 이런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잔느의 러브스토리는 말 그대로 절절하다.

잔 에뷘테른은 모딜리아니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준 뮤즈이다. 예술가들의 삶에 빠지지 않았던 가난과 지병이던 결핵 덕에 죽음을 늘 염두해야 했던 모딜리아니였다. 이런 그에게 14세 연하 연인이 바친 조건 없는 순진무구한 사랑은 그에게 삶과 예술을 이어나가게 해주었던 커다란 원동력이었다고 하겠다.

첫눈에 반해 함께 시간을 보낸지 2년 만에 그는 작품 속 그녀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 죽을 때까지 성공을 이루지 못했던 모딜리아니였지만 그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이 꽤나 행복했었나보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 잔을 남기고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뇌막염으로 35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이후 그를 잊지 못하고 며칠 뒤 자살하게 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일화인데, 이는 둘 사이의 교감이 얼마나 컸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잔은 결국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 6층 자신의 방 창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들의 사랑은 고작 3년 남짓, 게다가 가족들로부터 인정도 받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음으로 소개해 볼 화가는 프리다 칼로이다. 모델을 구하기 힘들다거나 페이가 전혀 주어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모델이 있는데, 이는 바로 화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리게 되는 자화상이지만 지속적이게 작품의 주제로 삼는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나 창의력을 주로 활용해야 하는 예술가에게 있어, 자신의 모습보다는 뮤즈가 선사하는 새롭고 신선한 영감들이 그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기폭제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멕시코 출신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에게도 화가로서의 의지 그리고 자신의 삶을 유지 시켜주던 디에고(Diego Rivera)라는 뮤즈가 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그림에는 그로 인해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작품 또한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녀가 우울하거나 비참한 상태는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비록 소아마비 때문에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그녀였고 일생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늘 당당했던 그녀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공부도 꽤 잘해 의사의 꿈을 키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만한 사건은 그녀를 평생 고통에 시달리게 했던 ‘전차사고’라고 할 수 있다. 중학생이던 그녀가 탔던 버스가 전차와 부딪치며 안타깝게도 버스의 쇠막대기가 프리다의 왼쪽 옆구리로 들어가 자궁을 관통했다. 그리고 척추와 쇄골을 포함해 오른쪽 다리는 무려 일곱 조각으로 부러졌다. 그녀의 몸 상태는 말 그대로 처절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녀였지만 앞으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선고에 절망에 빠져 한동안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의사의 꿈 대신 무료한 시간을 채울 소재로서 그림을 택했다. 척추 손상으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고 딱히 대상을 구하기도 어려웠기에 비스듬히 설치한 천정의 유리를 통해 비치는 자신의 얼굴 보고 또 보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갔다.

작품 ‘부서진 기둥’에서 보면 이런 그녀의 상황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날것 그대로 드러난 그녀의 척추뼈들과 부러지고 깨어진 그 상처들 틈 사이로 수도 없이 박힌 못들이다. 또한 부서질 듯한 그녀의 몸을 간신히 지지하고 있는 쇠가 달린 코르셋은 온몸을 칭칭 감고 있다. 이런 모습을 통해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살필 수가 있으며, 끝도 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은 그 고통의 크기를 말해주는 듯하다.

그녀 자신의 자화상 이외에도 그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줬던 이는 바로 그의 연인이자, 아들 그리고 어머니, 영원한 우상이라고 그녀가 늘 말했던 남편 디에고가 있었다. 하지만 여성 편력이 심했던 디에고는 크나큰 사랑만큼이나 그녀에게 상처를 줬고, 이런 심정을 프리다는 자화상 속에 담아 표현했다. 이를 살필 수 있는 작품으로는 목판 위에 유화를 활용해 그림을 그렸던 ‘테후아나 여인으로서의 자화상’을 들 수 있다.

멕시코 최고의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 또한 예술가로서 인지도가 높았고 꽤 많은 추종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화가로서 입문을 권유받은 프리다 또한 그를 존경했다. 이후 둘의 관계가 깊어져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지만 결국에는 파경을 맞고야 만다. 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던 프리다였지만 디에고를 자기 자신보다도 사랑했던 그녀였다. 이런 그녀의 사랑은 ‘내 마음 속의 디에고’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작품 테후아나 여인으로서의 자화상에 잘 드러나 있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멕시코 남서쪽에 위치한 테후아나는 모계적 전통이 강한 탓에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강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복장을 한 작품 속 그녀의 이마에는 디에고가 새겨져 있다. 사실 그녀가 이런 복장을 한데는 강한 여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면모도 있기는 했지만, 인디언 문화를 사랑했던 디에고에 대한 그녀의 사랑도 함께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프리다는 이런 자신의 심정을 자화상에 담아냈고 어느 면에서 보자면 그림은 그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한 탈출구이자 사랑의 피난처로서 발현되었던 것이라 하겠다.

예술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인 영감 그리고 이 영감과 창의력을 발현시켜주는 그 존재에는 때론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혹은 자기 자신일 때도 있었으며 삶을 살아가다 마주치는 수많은 여러 존재이기도 했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연 또한 그에 합당한 계절에 맞게 다가오고 멀어지는 것처럼,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소소한 인연을 소중히 아름답게 잘 가다듬어 내는 일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