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짜기의 냇물소리 더욱 새롭게 들려온다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94) |
| 2020년 11월 24일(화) 1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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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일연
해 저문 첩첩한 산 산길을 지나는데
사방엔 가도 가도 인적은 끊어지고
골짜기 냇물 소리는 새롭게 들려오네.
日暮千山路 行行絶四隣
일모천산로 행행절사린
竹松陰轉邃 溪洞響猶新
죽송음전수 계동향유신
삼국유사에 얽힌 이야기를 다음 5회에 걸쳐 이 자리에 게재한다. 백월산(창원시 소재) 남쪽 3천보쯤 되는 곳에 선천촌(仙川村)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란 사람이 살았다. 그들은 ‘속세의 얽힌 것을 풀어 버리고 무상의 도를 얻기로’하고 출가해 수양하며 미타를 염불했다. 성덕왕 8년 4월8일, 해 질 무렵 달달박박의 기도처 북암(北庵)으로 예쁜 낭자가 사향 냄새 풍기며 찾아와 하룻밤 묵기를 청했던 다음 ‘사’(詞)를 바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골짜기의 냇물소리 더욱 새롭게 들려온다오(娘子之偈1)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전구인 오언율시다.
작가는 일연(一然:1206-1289)으로 고려 중기의 승려이자 학자다. 1227년(고종 14) 승과의 선불장에 응시해 장원급제했다. 비슬산의 보당암에서 수년간 참선에 몰두하다 1236년 10월 몽고가 침입하자 문수의 계시로 보당암의 북쪽 무주암으로 거처를 옮겨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해 저문 첩첩한 산 그 산길을 가는데 / 가도 가도 사방에는 인가가 끊어졌다오 // 대나무와 소나무 그늘 더욱 깊어만 가니 / 골짜기의 냇물소리 더욱 새롭게 들려온다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낭자가 드리는 송게(1)]로 번역된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는 주로 불도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면서 요약과 같이 찬시가 등장하곤 한다. 여기에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 관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낭자인 시인은 노힐부득(努夫得)의 고마움을 담아 다음과 같은 게송을 했다. [해 저문 첩첩한 산 그 산길을 가는데 / 가도 가도 사방에는 인가가 끊어졌다오]라고 했다. 어두운 산길에 인가가 없어 잠잘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잠자리를 청하는 게송을 읊었다.
화자는 전구에선 쉴 곳이 없다는 선경의 시상에 이어 후정을 이어간다. [대나무와 소나무 그늘은 더욱 깊어가는데 / 골짜기의 냇물소리 더욱 새롭게 들려온다오]라는 뜻을 담는다.
노힐부득을 낭자를 위해 자리를 마련한 공을 기리는 일연 찬시는 다음과 같다. [골짜기 어두운데 어찌 아득한 길 가리(谷暗何歸已暝煙) / 남창에 대자리 있으니 머물다 가오(南窓有 且流連) // 밤 깊어 은은히 백팔염주 세고 있으니(夜 百八深深轉) / 이 소리 시끄러워 길손 깰까 두렵소(只恐成喧惱客眠)]라고 읊었다. 하마 다른 길손이 여기 올까마는 그 정만은 차곡차곡 담아냈다.
※한자와 어구
日暮: 해가 저물다. 千山路: 천산의 길. 온갖 산. 行行: 가고 가다. 絶四隣: 인가가 끊어지다. // 竹松: 대나무와 소나무. 흔히 음만 따서 죽송이라 함. 陰轉邃: 그늘이 깊어만 가다. 그늘지다. 溪洞: 골짜기. 響猶新: 냇물 소리가 더욱 새롭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