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설 몇 마디 - 김종(시인) |
| 2020년 12월 07일(월) 18:23 |
▲시 <가을을 남기고 간 흔적>은 할아버지와 손잡고 이것저것 간섭하는 손자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요즘에는 흔치 않은 이 같은 광경이 이정훈 시인의 상상 중에 그려진 것은 아닐까 싶다. 파아란 가을 하늘, 붉게 타는 산자락의 단풍, 들녘에 가득한 황금 벼, 밭두렁에서 익어가는 콩팥 나부랭이…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외할아버지와 길 가던 손자 녀석이 해 저문 줄 모르고 장꿩이 날면 그것 참견하고 메뚜기 방아깨비 잡아 달라 조르는 사이 노을 진 하늘에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귀갓길 재촉하는 할아버지와 해찰하는 손자의 모습이 이 가을이 남긴 삽화가 아닐까.
▲‘떨켜’는 낙엽이 질 무렵이면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세포층을 이르는 말이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눈 틔울 때 벌써/먼 이별을 준비했다”는 것이고 “떠난 자리 단단히 지키며/다시, 때를 기다리는” ‘굳은 희망의 아픔’을 자별하게 노래한다. 한 잎 한 잎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생명의 비장함이란 “이른 봄날의 찬란한/만남을 위한 약속”에 전제되어 있다.
비우는 것은 채우는 것의 필연이고 비우고 채우는 자리에는 두 개의 간극을 잇는 이음새 같은 것이 필요하겠는데 이 같은 이음새의 부분을 ‘떨켜’로 상징했다.
▲수필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은 글 읽는 재미가 컸다. 강원도 여행의 마지막 밤에 일락서산에다 맘 맞은 숙소는 예약불가의 상태여서 막막한 심정으로 길이 좁은 산속에서 찾아낸 숙소는 꼭대기에 위치한 썰렁하고 오래된 구조물이었다. 배정받은 숙소의 입구에서 만난 자작나무 한 그루로 맘을 달래며 내려다본 주변의 경관은 절경이다.
산중의 일몰은 비장했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난 자작나무는 불행 중에 만난 횡재였다. 점점 깊어가는 짧은 여름밤에 ‘당신을 기다린다’는 꽃말의 자작나무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화자의 연정이 꿈결인 듯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