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마디)김종 시인

2020년 12월 21일(월) 18:19

▲<심연>은 “하루의 일상이 온전히 잠”든 시간에 “단풍잎을 머리에 풀어놓고 해맑게 웃는다”고 노래한다. ‘심연’은 어의적으로는 ‘수심이 깊은 못’인데 바다보다 깊고 울음보다 짙푸른 ‘마음’의 세계를 여인의 한에 비겨 갈매기 한 마리가 주워 먹었다고 했다. “눈발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매화”를 ‘내 마음’이라 한 화자는 “그림도 없고 그늘도 없는 나는 너”라 한 관계적 상황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의지를 보인다.

▲<마스크>를 “한사코 예쁜 걸 써야 한다면서,/엄마는 오늘도 비싼 꽃무늬 마스크를 사 오셨다.”까지 읽고 동시도 세태 반영이 이리 명약明若할 수 있구나를 새삼 돌이키는 시간이었다. 이문석 시인은 동시문학을 한 수준 끌어올린 문단의 원로이다. 세월을 많이도 살았지만 동심을 아동보다 더 아동스럽게 노래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재능이다. 이문석 시인께서 197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가뭄>의 감동은 지금껏 직핍한 채다. ‘마스크’를 “코로라19 막아주는 방탄조끼”라 노래하는 이문석 시인은 여전히 울림이 큰 작품을 보인 동시문학의 대가이다.

▲<인생, 가는 길이 외로워도>는 ‘인생’을 사유적으로 노래한 의지적인 시다. 인생은 동반자 없는 외로운 여정이라면서 그 외로움을 이겨내는 힘이 그리움과 기다림을 추진력 삼아 강물같이 흐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같은 도정에서 슬프지만 슬퍼할 틈도 없고 외롭지만 외롭다고 푸념할 새도 없는, 그래서 소리 없이 저 혼자서도 흐르다가 멈추다가 들꽃처럼 피어나는 삶의 여정은 분명 묵묵히 견디며 걸어가는 일일 터이다. 인생, 그것은 삶의 섭리를 푸른 파도로 달려 다니는 그리움 같은 건 아닐까.

▲<눈썹을 밀며>는 ‘눈썹’이라는 주제어 주변에 여러 이야기를 메시지 형식으로 배치한 시적 재치가 번득이는 수필이다. 작품 속의 눈썹은 초승달일 수도 있고 새벽하늘을 날아오르는 날개일 수도 있겠다. 새벽까지 누군가를 기다리다 몸이 여윈 초승달은 새벽 시간을 사유하기에는 안성맞춤 소재다. 허문정의 문장에서 여자 눈썹에 남자 수염을 견주면서 이를 조물주의 세심한 배려라는 언급에다 사는 일은 “내 손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내가 손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습에 매어 날지 못하는 욕망이 눈썹 속에 갇혀” 지내는 일임을 읽으면서 시와 산문을 수륙양용水陸兩用으로 노 젓는 허문정의 옹골찬 재능을 새삼 음미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