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솟대의 꿈 / 수필 윤소천 |
| 2021년 01월 04일(월) 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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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신축하면서 화목보일러와 기름보일러를 함께 설치했는데, 산 아래 마을인지라 난방은 화목으로 하고 더운 물을 쓸 때는 기름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산림 가꾸기 사업으로 벌목과 가지치기한 나무가 지천이지만 자르고 가져오는 일이 힘들었다. 나무를 길가로 옮기는데 지게가 아니면 안 되어 땔감이 눈앞에 있어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런 처지를 아는 지인으로부터 아파트단지에 땔감으로 쓸 만한 폐목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가서 보니 가지치기를 한 잡목들 틈에 십 미터 가까이 되어 보이는 어린애 허리만 한 소나무 기둥이 십여 개나 있었다.
누워 널브러져 있는 것을 들여다보니 정교하게 다듬어진 새를 머리에 인 솟대였다. 고층 아파트 뜰 가장자리에 서 있는 솟대를 여러 해가 지나자 낡아 철거해 놓은 것이었다.
이십층 고층 아파트 숲에 이삼 층 높이의 솟대를 세운 발상이 조금은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이 단지를 지키는 행운의 수호신 역할을 한 솟대였다. 그런데 수명이 다했다고 잘라 아궁이에 넣을 생각을 하니 왠지 마음에 걸려 꺼림직했다.
궁리 중에 제일 실한 하나를 남기고 나머지는 잘라 옮기기로 했는데 문제는 남아 있는 솟대였다. 처음에는 수리를 해 마을 어귀 적당한 곳에 돌무더기를 만들어 세우면 된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크고 무거워 옮기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여러 생각 끝에 옮기고 관리하기도 쉽게 가슴 높이로 잘라 집 마당에 세우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허리가 잘려 가슴만 남은 솟대가 홀로 베란다 앞 화단 가장자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솟대 밑동에 동백기름을 흠뻑 발라 비닐로 싸매어 묻고, 지주목을 세우니 당분간 유지하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솟대 앞에는 여러 해 된 철쭉을 옮겨 심고 주위의 나무를 다듬어 매무새를 갖추니 솔개 같기도 하고 기러기 같기도 한 새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기상 있어 보였다.
밤사이 많은 눈이 내린 아침, 보일러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따뜻한 거실에 앉아 창밖을 본다. 나무들과 함께 눈을 머리에 이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솟대가 바람과 구름과 어우러져 하늘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키 작은 솟대지만 따뜻한 가슴이 남아 있어 낮에는 새들과 이야기를 하고, 밤이면 은밀하게 꾸는 내 꿈 이야기를 별들에게 소곤소곤 전해줄 듯하다.
<윤소천 약력>
▲에세이스트, 한국수필 천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