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팬데믹(Pandemic) 명화 속 흑사병, 그리고 ‘희망’ 코로나 팬데믹은 ‘한때’…우리 모두 ‘함께’가 ‘희망’이다

2021년 01월 06일(수) 19:11

윌리엄 워터하우스 作 ‘판도라’ <위키피디아 검색>

지난 한 해를 떠올려보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단어는 아마 코로나19가 아닐까 싶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일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을 끈질기게 괴롭혀 대던 이 전염병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끝이 나게 될까?

필자 또한 작년 초까지만 해도 이러다 말겠지 싶었지 마스크를 이렇게 길게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현재 마스크는 어느덧 우리 삶의 일부분이 돼버렸다.

일전에 사스나 메르스 등 여러 가지 전염병들이 심심찮게 돌기는 했지만 이렇게 심각한 상황은 처음인 듯하다. 마치 세균전을 방불케 하는 전 세계적 확산세 속에 우리는 말 그대로 소리없는 세계전쟁을 치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전의 1, 2차 대전과는 달리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 소리없는 전쟁의 상대가 ‘자연’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늘 베풀어주기만 하던 ‘자연의 역습’,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임이 분명하기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시점이라 하겠다.

이런 팬데믹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빼앗긴 우리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서로 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처럼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했던 상황으로는 14세기 유럽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던 흑사병(The black death)을 꼽을 수 있다.

유럽 인구의 ⅓이 죽어 나갔던 이 병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옮는 것으로, 페스트라는 작은 세균에 의해 철옹성 같던 중세 유럽 봉건사회가 막을 내리고 말았던 거대한 사건이다.

따라서 치료제를 생각도 하지 못할 당시 중세인들은 이를 천벌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고, 무조건 신에게 매달리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를 대변해 주는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 ‘성 세바스티아노’를 보면 화살이 온몸에 박힌 세바스티아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드레아 만테냐 作 ‘성 세바스티아노’ <위키피디아 검색>

보다시피 수십 개의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고 눈을 뜨고 있는 그는 후에 성인으로 추대받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박해받던 다른 신자들을 돕다 기독교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당시 왕에게 죽음을 명받게 되지만 수많은 화살 속에서도 생명을 부지했던 그는 기독교의 성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흑사병을 신의 벌이라 생각했던 유럽인들은 죽음의 고비를 맞고도 살아남은 성 세바스티아노를 ‘흑사병의 수호성인’으로 여기며 그의 그림에 기도를 올리고 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그들의 병을 낫게 할 수 없었고 이런 미신들은 점차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잃어갔다. 결국 인류는 신(神)중심에서 인간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는 합리적인 사고로의 전환 과정 또한 맞이하게 된다.

한편, 이런 흑사병을 아예 주제로 택했던 화가들도 있었다. 그중 스위스의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ocklin)의 작품을 소개해 볼 수 있는데, 1827년 생인 그가 중세 때 창궐했던 병에 왜 관심이 있었는지는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르놀트 뵈클린 作 ‘흑사병’ <위키피디아 검색>

스위스 바젤 출신으로 독일에서 풍경화를 배웠고, 로마에서 한동안 살며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신화 속 피조물들을 그리는 낭만적 상징주의자로 일컬어졌다. 특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러 요정, 괴수들이 그의 주된 주제였다.

그러나 그가 30대가 될 즈음 이런 상징주의적인 요소들 가운데 신화와 전설 등은 점차 화면에서 빠져나가게 되고 그저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가기 시작한다.

또 하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으로는 주제에 있어서 ‘죽음에 대한 그의 관심도’가 마치 ‘집착’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죽음의 신이 읊조리는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영감을 받는 화가의 모습을 묘사한 ‘죽음의 신이 있는 자화상’ 에서도 그의 관심사는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고 언젠가는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인 죽음에 그는 왜 그렇게 집착적인 면모를 보였던 것일까? 그의 작품 ‘페스트’를 한번 살펴보자. 작품의 제목마저도 흑사병인 이 그림에는 보이는 그대로 전염병의 참담한 모습이 드러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중심에서 커다란 낫을 휘두르고 있는 사신이다. 온몸이 새까맣고 뼈만 앙상한 사신은 무서운 표정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향해 무참히 낫을 휘두르고 있다. 게다가 그가 지나간 자리의 사람들은 죽거나 혹은 죽음이 임박한 듯 스러진 채로 거리를 나뒹굴고 있다.

중세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유행을 이어오던 이 끔찍한 병은 19세기 뵈클린이 사는 곳에도 도달하게 됐고, 자녀들의 목숨마저 앗아가 버렸다. 물론 죽음에 대한 그의 집착이 당시 혁명과 전쟁 등의 공포에서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론 그의 자녀 중 6명을 각종 전염병으로 잃어야 했던 가족사가 더욱 큰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결국 1928년 영국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명하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흑사병은 종식되게 된다.

인간의 한계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인류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매번 역설적이게도 ‘위기를 기회 삼아’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며 또한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가며 늘 재도약의 길을 일구어 냈다.

여태껏 커다란 팬데믹 상황을 여러 번 이겨낸 우리이기에 언제나처럼 ‘희망은 있다.’

이 희망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를 통해 인간 세상에 퍼지게 된 고통들 그리고 상자 속 남겨진 희망에 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많이들 알고 있을 터이다. 이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 중 소개할 작품은 영국 라파엘전파의 일원이었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William Waterhouse)의 ‘판도라’(Pandora)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와 전설 등 문학을 주제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던 화가는 특히나 이야기 속 여성들을 예술적으로 잘 표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그렸던 작품 ‘판도라’ 또한 수작으로, 작품을 보면 한 여인이 숲속에서 커다란 상자를 열어보다 끔찍한 내용물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 눈을 질끈 감은 채 황급히 상자를 닫으려는 순간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어로 ‘모든 선물을 받은 여자’라는 뜻을 가진 판도라.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외모, 몸매, 좋은 옷, 그리고 갖가지 보석 등 그녀가 신에게 받은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딱 한가지 ‘절대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 는 경고가 붙은 ‘네모난 상자’ 하나만은 달랐다.

그리고 판도라의 ‘호기심’, 그녀는 사실 신의 왕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불을 전달해 준 프로메테우스와 그 불을 받은 인류를 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인간에게 보낸 미끼와도 같았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여인은 프로메테우스의 아우인 지상의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내진다.

이후 금기를 어기고 상자를 열게 되는 판도라로 인해 인간들에게는 전에 없던 ‘고통과 고난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상자 안에 든 것은 슬픔, 절망, 분노, 증오, 질투…. 그리고 전염병까지 말 그대로 좋지 못한 흉측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그녀로 인해 온갖 재앙들이 세상 곳곳에 퍼져 버렸지만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한 ‘희망’만은 상자 속에 그대로 남겨져 버린다. 이 남겨진 희망에 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불행한 일을 겪어도 희망만은 곁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희망이란 ‘고통을 이겨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돼주는 것 바로 그런 의미일테다. 이런 희망이 있기에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도 곧 종식의 시기를 맞이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끌며 버티는 중인 코로나와 재발을 반복하는 이 팬데믹 상황을 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하나는,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와 내가 그리고 인간과 자연,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서로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며 ‘서로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게 된다. 라는 작은 사실을 명심해야만 인류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두고서, 그 어떤 것이 되었건 간에 ‘이기심이 가득 찬 눈’을 뜨려 하기보다는 이럴 때일수록 멀리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려는 혜안(慧眼)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묻고 싶다. “가족과 친척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이들을 살리고자 온 힘들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과연 어떤 것이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를…”.

그리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존엄한 생명 존재와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도대체 무엇이 있을 수 있는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