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산이 평야가 되고 이 물이 모두 마른다면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01) |
| 2021년 01월 19일(화) 1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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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모래 벌 말 세우고 배 오기 기다려
한줄기 물안개는 만고의 수심인데
산수가 변한다 하면 인간이별 없으리.
沙汀立馬待回舟 一帶烟波萬古愁
사정립마대회주 일대연파만고수
直得山平兼水渴 人間離別始應休
직득산평겸수갈 인간이별시응휴
이별은 많은 정한을 남겼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달리는 차에서 졸다가 깨어나 창밖을 보면 주변의 물체가 뒤로 달리고 있다. 깜짝 놀라 차 안으로 시선이 모이면 다시 차가 가고 있는 현상이다. 잠이라는 무의식이 주변 물체의 부동과 차의 유동을 정지시켰다가 의식이 돌아오면 현실로 환원되는 것이다. [모래 벌에 말을 세우고 배 돌아오기를 기다리니 / 한 줄기 물안개는 만고의 수심을 띠고 있구나]라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 산이 평야가 되고 이 물이 모두 마른다면(題芋江驛亭)으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으로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다. 885년(헌강왕 11) 당나라 희종의 조서를 가지고 신라로 귀국했다. 신라 49대 헌강왕은 당에 보내는 외교 문서 등을 작성하는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으로 등용했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모래 벌에 말을 세우고 배 돌아오기를 기다리니 / 한 줄기 물안개는 만고의 수심을 띠고 있구나 // 이 산이 평야가 되고 이 물이 모두 마른다면 / 서러운 인간이별일랑 비로소 없어지련마는]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우강역 정자에서]로 번역된다. 이 시는 시인이 빈공과(賓貢科) 합격 후 표수현위(漂水縣尉)를 지내던 18-23세경에 우강역 정자에 올라서 지었다. 시인은 우강역 정자가 있는 나루터 모래섬에 자신이 타고 왔던 말을 세워두고 건너편으로 갔던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이별이 다가온다.
시인은 배 타고 떠나려는 사람과 나란히 모래 가에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읊은 시상이다. 모래 벌에 말을 세우고 배가 돌아오기 기다리고 있노라니 한 줄기 물안개는 만고의 수심이라 했다. 선경을 잘 색칠하는 멋을 그렸다.
화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연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후정의 소회로 피력했다.
‘이 산이 평야가 되고 겸하여 이 물이 다 마른다면, 오늘 당신을 보내려 하는 이 서러운 인간세상 이별이 비로소 없어지련마는’이라 했다. 서러운 이별이 없을 것이라는 시상 주머니를 털어낸다. 당대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에서 ‘연파강상사인수’(煙波江上使人愁)라 했듯이 물안개가 이별의 시름을 더해 주고 있어 보인다. 이런 시름도 산이 평지가 되고 물이 말라 버린다면 이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한자와 어구
芋: 토란. 덮다. 沙汀: 모래가(汀 물가). 立馬: 말을 세우다. 待: 기다리다. 回舟: 배가 돌아오다. 一帶: 한 줄기 띠. 烟波: 물안개. 萬古: 만고. 愁: 수심. // 直: 바로. 得: ～이 되다. 山平: 산이 평원이 되다. 兼: 아울러. 水渴: 물이 마르다. 人間: 인간. 離別: 이별. 始: 비로소. 應休: 응하여 없어지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