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메가시티’ 속도 내는데, 광주·전남은 / 이정록

2021년 02월 02일(화) 19:17

이정록 전남대 교수·前 대한지리학회장

지난달 27일 부산·울산·경남이 뉴스를 발신했다. 오는 4월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 합동추진단’을 발족시켜 2022년 1월까지 ‘부울경 메가시티(일명 동남권 메가시티)’를 출범시키겠다는 일정이 그것이다. 이 방식은 부울경이 행정구역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지방자치단체 형태의 새로운 조직을 하나 더 만드는 전략이다.

메가시티(megacity) 개념 규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구 1천만명 이상 거대도시를 말한다. 베이징, 도쿄, 서울 등이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핵심 도시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초월해 경제와 생활이 기능적으로 연결된 1천만명 이상 도시권을 뜻한다. 우리나라 수도권(2,344만명), 도쿄권(3,440만명), 뉴욕권(2,150만명), 런던권(1,550만명) 등이다. 후자는 메가시티리전(megacity regions)으로 불리는 광역경제권이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모델은 ‘간사이(關西)광역연합’이다. 일본 지방자치법에 의해 2010년 12월 만들어진 특별지방공공단체다. 간사이 지방 2부(府), 6현(縣), 4정령시(政令市)가 회원이다. 행정구역을 통합하지 않으면서 광역행정을 위해 만든 조합(組合) 방식이다. 방재, 관광·문화·스포츠, 산업, 의료, 환경보전, 자격시험·면허, 직원연수 등 7개 사무를 담당한다. 최근 성과로는 ‘2025년 오사카·간사이EXPO’ 유치가 대표적이다.

부울경은 왜 메가시티 전략에 목을 매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세계적 흐름에 편승한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경제에서는 지역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세계도시(world city) 역할을 하는 핵심 도시를 중심으로 광역경제권을 구축하면 지역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도쿄권과 수도권처럼 말이다. 부울경도 부산을 중심으로 광역경제권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다른 하나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제2의 경제권이 되려는 욕심이다. 우리나라에는 ‘수도권공화국’과 ‘비수도권공화국’이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는가. 수도권 범역이 ‘수충권(수도권+충청권)’으로 확대되는 추세에서 서울과 지리적으로 떨어진 동남권은 변방(邊方)일 수밖에 없다. 충청권에 밀려 3등 국민으로 살 수 없다는 몸부림이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이다. 부산·울산·창원 등 대도시가 연합하면 수도권에 대극(對極)하는 800만명 규모의 광역경제권이 탄생한다.

메가시티는 지역 경쟁력 제고에 좋은 전략인가. 그렇다. 글로벌 경제에서 사람과 자본 이동은 초국(超國)적이다. 지식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드는 주체는 공장이 아니라 인재다. 인재가 메가시티로 몰리니 자본도 당연히 뒤따라온다. 메가시티는 인재와 자본을 흡수하는 블랙홀이다. 스웨덴 경제학자 미드달이 말한 순환적·누적적 인과과정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도시정책실’을 만들어 뉴욕 등 대도시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도시권국가(metro-nation)’ 전략을 채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실현 가능한가. 시기만 문제일 뿐 가능하다고 본다. 작년 지방자치법(제199조)이 개정돼 2개 이상 지자체가 공동으로 특정 목적을 위해 광역적 사무처리가 필요한 경우는 특별지자체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아마도 2022년 1월경 또는 민선 8기가 시작되는 2022년 7월경 출범하리라 판단된다.

만약 부울경 메가시티가 공식 출범하면 우리나라 국토의 공간구조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수충권과 동남권이 중심(core)이 되고 대구·경북과 호남(광주·전남·전북)은 주변(periphery)으로 밀려난다. 존 프리드먼이 주장한 ‘중심·주변 불균형 공간 구조’가 더욱 고착된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집적이익, 규모경제, 경로의존성, 입지적 관성, 수확체증 법칙 등이 작용해 주변의 재화와 서비스를 흡수하는 블랙홀이 된다. 제2의 수도권이 부산 중심 동남 지역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광주·전남은 어떤 행보(行步)를 해야 할까. 먼저 몸집을 키워야 한다. 범위와 규모경제를 누리려면 인구가 최소 500만명 정도인 메가시티는 돼야 한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광주·전남 행정통합을 제안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광주와 전남이 합쳐봐야 330만명에 불과하고 전남 인구는 계속 하락세란 점이다. 자체 힘만으로 인구를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안은 있다. 남해안을 축(軸)으로 부울경과 광역교통망으로 연결하고 협력하는 광역경제권 구축이다. 일명 ‘남부 경제권’ 말이다.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은 속도를 내고 있다. 광주·전남은 먼 산 불구경하듯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새로운 광역경제권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