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등잔불 추억 / 수필 장영수 |
| 2021년 02월 15일(월) 1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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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처음 전기가 들어왔던 그 날이 생각났다. 60, 70년대 시골은 대부분 석유 등잔으로 불을 밝혔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정유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석유를 수입해 정부에서 판매했다.
마을에서는 이장님을 통해 신청을 하면 이장님이 석유를 받아다가 신청한 양만큼 나눠줬는데, 한 되들이 유리병에 가득 담긴 석유병은 어린 내가 들기에는 버거웠다. 유리병 밖으로 석유가 흘러 손에 묻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루 일을 끝낸 아버지께서는 어두운 등잔 아래서 새끼를 꼬고, 우리는 글을 읽으면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어머니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등잔불은 초가집 방안에 어둠을 밝혀주고 온기를 나눠주며, 입김을 섞어 옹기종기 앉아 가족들의 정(情)을 나누고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 있었다.
희미한 불빛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 아버지의 기침에 등잔불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렸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에 졸다가 머리카락을 태워 먹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면 코에서는 시커먼 그을음이 나왔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 탈 없이 잘 컸다. 이런 석유 등잔불을 쓰다가 제사 때나 명절에 양초를 쓰면 어찌 그리도 밝았던지, 어른들은 기어가는 개미도 보인다고 좋아하셨다.
그러던 우리 마을에도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전기라고 하지만 그땐 지금의 한국전력에서 공급하는 그런 전기가 아니었다. 물레방아에 전기 모터를 돌려 생산된 전기로 겨우 백열등만 밝히는 그런 정도였다. 처음으로 방앗간에 전기가 들어오던 날, 우리 동네는 잔칫날이 따로 없었다.
여든이시던 석이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야~ 저것이 타다 우리가 자고 있는데 이불에라도 떨어지면 어쩐 다냐.” 하시면서 걱정을 하셨고, 할머니 한 분은 “돌아가신 산골네는 얼매나 원통할꼬” 하시면서 먼저 떠난 친구를 생각했다.
전깃불은 요즘처럼 220/110V처럼 밝은 것은 아니었으나 촛불에 비하면 엄청나게 밝았다. 책을 읽어도 머리카락 태워 먹을 일이 없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가뭄이 들거나 겨울철에는 어두웠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 장마철에는 더 밝았다. 겨울에 불이 어두운 것은 물길이 얼어 물레방아가 천천히 돌아가기 때문이었는데, 초저녁에는 밝다가 기온이 내려감에 따라 차츰차츰 어두워져 밤 10시가 넘어가면 홍시처럼 되면서 양초 불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날은 동네 청년들이 모여 나무 매와 돌멩이를 들고 얼음을 깨고 물꼬를 틔웠다. 추위가 어느 정도는 가능했으나 너무 추워 얼어붙어 버리면 전기를 켜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시골집은 3칸 집으로 부엌과 방 두 개가 전부였지만, 한 집에 한 등씩 설치가 됐고 집이 큰 집은 두 등씩 설치됐다. 큰방은 부모님이 쓰시고 작은방은 우리가 사용했다. 이런 집은 전기 한 등만 설치됐는데 두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큰방과 작은방 사이 벽에 주먹이 들락거릴 정도의 구멍을 뚫어놓고 거기에다 등을 걸었다.
흙벽은 얇아서 조그마한 소리도 다 들렸다. 그런 곳에다 구멍까지 내었으니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우리 부모님은 그런 방에서 6남매를 아무 탈 없이 생산하셔서 잘 기르셨다. 요즘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석유 등잔불과 양초, 물레방아 전깃불, 우리는 옛날의 어려움에 비해서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문명의 고마움을 너무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닐까.
<장영수 약력>
▲2008. 월간 문학 세계 수필등단
▲충성대 문학상, 알뜰 생활체험 수기 광주시장상, 빛 사랑 한전 문학상, 표어공모 국방부장관상
▲광주 문인협회 이사, 무진주 수필 회원
▲‘고동골에 남겨둔 이야기’, ‘행복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