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세탁 중입니다 / 이송희

2021년 03월 07일(일) 17:57

이송희

때 절은 하루를 세탁기에 넣는다
먼지 낀 내 눈과 끌려 다닌 발까지
밖에서 돌아온 몸들이 뒤엉키며 돌아간다
우울한 저녁마다 물 뿌리고 씻어내며
어디선가 떠돌다 왔을 몸과 몸이 섞인다
길들은 풀어지면서 다시 감겨 돌아가고
어느덧 잘 마른 내가 세탁기에 걸어 나온다
이제 나는 그를 넣어 버튼을 누르고
왔던 길 반대편에서 그가 오길 기다린다
(시집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시인동네·2020)


[시의 눈]

주말이니 세탁기나 돌릴까 봐요. 바쁜듯하지만 집에 머문 시간이면 흔히 그렇듯 세탁기를 구동시킵니다. 부부는 세탁물을 찾느라 구석을 두리번거립니다. 그게 프로그램화 되었습니다. 한 주 동안 ‘끌려 다닌 발’에 있다가 구석으로 던져두던 양말짝도 찾아내지요. 세탁기 속엔 세상 먼지를 ‘떠돌다 왔을 몸과 몸’이 섞여 돕니다. 거기 ‘잘 마른 내가 걸어 나오’는 걸 보지요. 다음으로 그 사람 옷을 넣고 ‘버튼을 누를’ 차례입니다. 세탁하는 동안 정갈한 그 옷을 입고 나올 그대를 생각해 봅니다. 이 시에는 무형의 만남이 실재하는 모습보다 더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헌데, 두 사람 잠옷은 요즘 들어 왜 자꾸 엉길까요. 옷들도 사랑싸움을 합니다.

이송희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으로 ‘환절기의 판화’(2009), ‘아포리아 숲’(2011), ‘이름의 고고학’(2015), ‘이태리 면사무’(2016)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현대의 사회문제에 서정적으로 접근하면서도 리얼하게 표출해 내는 남도의 젊은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