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08) 바다에선 파도 소리 들리는데 앉아서 등불을 돋우네 |
| 2021년 03월 16일(화) 1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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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옹 최해
귀양살이 삼년에 병고는 안 그치고
한 간 좁은 방안에 절간의 중이로되
온 산에 인적 끊기고 파도 소리 들리네.
三年鼠逐病相仍 一室生涯轉似僧
삼년서축병상잉 일실생애전사승
雪滿四山人不到 海濤聲裏坐挑燈
설만사산인부도 해도성이좌도등
벼슬아치가 관아에 남아 있으면서 있었던 일을 반성해 보는 때가 있다. 오늘의 잘못도 생각해 보고 내일의 설계도 했을 것이다. 피어 있는 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이면서 사색에 잠기는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량주 한 잔을 들면서 가만히 시심에 젖어 드는 수도 있다. 지난 일을 회고하면서 온갖 시심에 접어 보았던 모양이다. 귀양살이 삼년 동안 병고는 그치지 않고 한 간 좁은 방안의 삶이 절간의 중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바다에선 파도 소리 들리는데 앉아서 등불을 돋우네(縣齋雪夜)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졸옹(拙翁) 최해(崔瀣:1287-1340)로 고려 말의 문인이다. 성품이 강직해 세속에 아부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남의 선악을 밝힘으로써 윗사람의 신망을 사지 못해 출세에 파란이 많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독서나 창작에 있어서 스스로 깨달음을 매우 중하게 생각했다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귀양살이 삼년 동안 병고는 그치지 않고 / 한 간 좁은 방안의 삶이 절간의 중이로구나 // 온 산엔 눈이 내려 인적은 끊어지고 없는데 / 바다에선 파도 소리 들리는데 앉아서 등불을 돋우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눈 오는 밤 관아에서]로 직역해 본다. 적막이 감도는 어느 눈 오는 밤이었던 모양이다. 귀양살이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는데 관아의 작은 방에서 잠을 청하기란 여간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귀양살이 삼년 동안 병고가 그치지 않고 있다는 시상을 일으켰다. 인생을 진심으로 회한하는 느낌을 받는다.
시인은 일이 잘못돼 귀양을 가거나 요즘으로 말하면 옥고(獄苦)를 한번이라도 치르고 나면 힘든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본다. 귀양살이 삼년 동안에 병고는 그치지 않고, 한 간 좁은 방안의 삶은 마치 절간과 같다고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옥고를 치르는 일은 몸으로 때워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음을 느끼게 한다.
화자는 선정(先情)을 앞에 두고 후경(後景)을 뒤에 두는 식으로 전통적인 시상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시적인 묘미를 찾게 된다. 온 산에는 눈 내려 인적은 끊어진 지 오래되고 바다에서는 파도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데 등불을 돋고 있다고 했다. 후경을 보다 튼튼하게 놓아 시의 격을 높이고 있는 시상의 밑그림을 잘 그려 놓았다.
※한자와 어구
三年: 삼년. (귀양살이 ‘삼년’. 鼠逐: ‘귀양살이’란 뜻. 病相仍: 병고가 깊어졌음. 一室: 한 칸의 방안에서. 生涯: 한 생애. 轉: 삶. 似僧: 중의 신세와 같다. // 雪滿: 눈이 가득하다. 四山: 온 산이라는 뜻. 人不到: 사람이 도착하지 않다. 인적이 끊어짐. 海濤聲: 바다 파도. 裏坐: 방안에 앉아서. 挑燈: 등을 돋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