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김종 시인

2021년 03월 29일(월) 19:12

▲봄이 오는 길목에는 반드시 겨울이 존재한다. 겨울을 거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의 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혹한의 계절을 거쳐야 화창한 계절에 도달한다면 두 계절에서 우리는 천양지차를 느끼면서도 두 계절이 이웃해 있다는 사실 또한 감득한다. 작품의 시작은 “추운 겨울을 잘 견뎠으니/따뜻한 봄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겨울을 지나야 사랑을 낳고 만화방창 꽃을 피우는 봄을 만나는 것이니 그 결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아포리즘을 떠올리고 시인은 겸손과 감사를 노래한다. 겨울이 싫은 사람에게 기다리던 봄은 왔고 음지를 없애줄 햇빛까지를 읽게 하는 시였다.


▲동시 <땡큐 소마취!>는 횡재라도 만난 듯 할머니와 손자간의 대화가 옹골지고 아름답다. 부모자식보다 가까운 게 조부모의 사랑이다.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 앞에 손주 자랑하려거든 돈 내고 하라는 말이 나올 만큼 조부모의 손주 사랑은 자별하다. 먼저 손자 측에서 할머니에게 영어할 줄 아냐고 물었고 할머니의 모른다는 말과 가르쳐주면 ‘고맙다’는 말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의미적 감도를 확대해간다. 동화작가의 세련된 동시가 ‘땡큐’와 ‘땡큐 소마취’ ‘땡큐 소소마취’ ‘땡큐 소소소 마취’에 이르는 동안 할머니의 사랑과 손자의 재롱은 대견함을 넘어 재미있는 풍경 하나를 지었다.


▲시 <2G 핸드폰>은 핸드폰을 의인화해 ‘배가 불러 터졌다’는 대담한 표현을 깔고 냄새가 다르고 빛깔이 다른, 함께한 열다섯 해의 세월을 한 편의 시로 다듬었다. 하기야 세월이 이만하고 “나의 온몸 열 손가락/날 새는 줄 모르며” 너의 육체와 영혼을 만지는 삶이었다면 ‘너’는 나의 또 다른 삶이고 “또 하나의 나였던 너”라는 표현은 자연스럽고도 친근하다. 마무리에 와서 화자가 들려준 “이제는/혼자 밥 먹을 수도/혼자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식물인간이 되었구나”란 애정 어린 자백은 소속감을 넘어선 일체감까지를 읽게 한다.


▲수필 <엽서 한 장에>서 우리는 처음에는 무심상해도 나중에는 움직일 수 없는 관계로 나아가는 의미적 상관관계와 의외성을 느낀다. 서로의 소식을 편지로 주고받던 시절에는 일상을 연결하는 중요한 소통수단이 편지였다. 그 시절엔 밤새워 편지를 썼고 망부석이 다 되도록 답장을 기다리곤 했었다. 작품에서 화자는 지중해의 이드라 섬에서 보내온 ‘아름다운 엽서 한 장’으로 이동하고 이내 자신이 다녀온 지중해의 크루즈 여행을 떠올린다. 엽서에 담긴 풍경과 함께 “사랑의 빗장을 열어달라”는 시구를 읽고 처음엔 코웃음을 치면서 대단찮게 생각했었는데 뇌리에 불 켜진 의미의 시그널은 절대자를 향한 수직적 경외감으로 전환하고 신음처럼 흘린 말 ‘착각은 자유라지만 어쩔까 잉?’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