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프롤로그 - 연재를 시작하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바로 알고 ‘民主’ 자긍심 높여야

2021년 04월 14일(수) 20:00

선종 최초 가지산문을 개산한 조계종 종가인 보림사는 보물(寶)들이 숲(林)을 이루고 있는 절(寺)이라는 명성만큼 수많은 성보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어느 겨울날 보림사 주지 일선스님이 눈 속에 길을 내고 있다. 뒤에 보이는 2층 전각이 대웅전이다. <호남문화원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힘든 지금, 일상의 변화 가운데 하나는 어디론가 떠날 수 없다는 답답함이다.

최근 목적지 없이 비행기를 타고 국내 상공을 돌다 오는 상품이 출시돼 반응이 뜨겁다. 해외여행은 기약이 없고 선택지는 한적한 국내 여행뿐이다.

대부분 동네 산책길을 찾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인터넷으로 여행을 즐기는 ‘랜선 여행’을 떠난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부추긴다. 못 가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얻음과 동시에, 쳇바퀴 같은 일상으로부터 홀가분히 떠날 수 있는 해방감을 안겨준다. 고심 끝에 낯선 일상이 반복되는 따분함을 덜어주고,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고 싶은 마음에 역사문화 여행을 준비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난다는 그 자체로 정말 달콤한 여행이 됐으면 한다. 비행기만 타고 떠나는 이색여행보다 역사문화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생각이 바뀌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꼼꼼히 준비해 보겠다.

20회에 걸쳐 연재할 ‘정사(正史)로 읽는 전라도 역사문화여행’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1천200년의 시간여행이다. 기본적으로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각종 문헌에 기록된 역사, 문화적 사건을 다룰 계획이다. 전라도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이야기, 그 시절 민초들의 삶과 환경, 그리고 권력 집단의 이전투구 등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누구나 반문한다.

대적광전에 봉안된 국보 제117호 철조비로자나불 좌상. <호남문화원 제공>

역사는 힘 있는 자, 권력을 잡은 세력만이 한 줄이라도 기록에 남겨진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역사를 공부하면서 기록의 중요성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야기, 그중 우리와 같은 소시민의 발자취를 찾으려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이듯, 1천년 전에도 당연히 백성이 주인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대중과 역사서에 소개된 이야기보다는 소외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역이다’라는 홍보 카피가 떠오르지만, 와닿지 않는다. 사실과 전혀 달라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수도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치권의 선거용 광고에 속아 넘어갈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정치권에 발을 조금이나마 담갔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지역의 역사를 먼저 바로 알리는 게 미안함의 첫발일 거다. 전라도, 우리 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리면서 자긍심과 역사문화를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차의 구성은 한 사건을 중심으로 동선을 따라 주변의 환경과 역사, 문화 이야기를 전하면서 역사문화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 사건당 2회에 걸쳐 20회를 목표로 연재할 계획이다. 연재 전에 간단히 몇 편을 소개하겠다.

첫 번째 ‘고려 현종과 나주편’이다.

거란에 쫓겨 현종이 나주까지 내려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1주일가량 머문 기간의 행적을 찾을 계획이다. 외가였던 나주오씨의 동태까지 살펴보려는데, 쉽지는 않을 듯하다.

천년의 시간이 허락해 준다면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다. 네 마리의 말을 끄는 수레를 탔던 현종의 발자취를 따라, 객사와 동헌, 향교, 마을의 유적과 나주목 문화를 소개하겠다.

다섯 번째 이야기 ‘한국 최초 국립극장을 이끈 김창환’은 임방울의 외삼촌이다.

누구나 임방울을 알고 있지만 국창 김창환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이 직접 김창환을 불러 창을 들었을 정도로 그 당시 최고의 연예인이었던 그의 삶을 추적하려고 한다. 그가 말년에 살았던 광산구 삼도동에서 생활과 국창 임방울에게 영향을 주었던 많은 에피소드를 소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림사 비루자나불과 쌍탑의 비밀’편에서는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국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부처의 손 모양인 ‘수인’(手印)에 담겨 있는 의미를 통해 보림사의 비로자나불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대웅전 앞에 천년이상을 지키고 있는 국보 44호 쌍탑의 설립 경위와 복원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불교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이기를 나누고 싶다.

<신광재 역사문화 전문기자>

이처럼 국난의 역사와 소리꾼 국창의 이야기, 그리고 불교 문화재까지 다양한 이야기로 채울 계획이다.

국난의 시기에 고려 현종과 불교 역사를 통해 슬기롭게 국난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배움으로써 희망을 찾으려 한다. 물론, 입에 딱 맞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일상을 살다가 잠시나마 역사문화 여행의 휴식상태로 들어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굳이 역사문화 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잠깐잠깐 바쁜 삶을 쉬어가면서 이 글이 쉼표의 역할이 됐으면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