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 창사30주년 릴레이 에세이](13)김선기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장 기자 세계를 떠나 다시 기자를 생각한다 |
| 2021년 04월 14일(수)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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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7일은 예순여섯 번째 ‘신문의 생일’이었다. 이날은 1957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 61주년을 기해 제정된 줄 안다. 어린이들이 5월 5일 ‘어린이날’을 마치 자신들의 생일이라도 된 양 즐거워하듯, ‘신문의 날’ 역시 신문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생일과도 다름없는 날이기에 각오가 새로웠을 것이다. 그때 나도 그랬다.
어느 해 신문의 날로 기억된다. 광주매일 광천동 사옥 시절이다. 신문사 주변에는 유독 선술집이 많았다. 당시 김원욱 편집국장을 위시하여 정용화 정치부장, 이재창 편집부장, 박준수 경제부 차장(현 광주매일신문 대표이사)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다음 날 새벽 윤전기가 멈춰 설 때까지 잔을 기울였다. 물론 좌중은 편집국장이 이끌었다. 당시 이러한 모습은 각 신문사 근처 술집마다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요즘 그 같은 분위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듯하다. 언론창달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축하해야 마땅할 터이지만, 작금에 처해있는 신문업계의 현실을 직시하면 선뜻 자축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회의 목탁’이라 일컫는 신문은 한 나라와 국민의 문화 수준을 가늠케 하는 척도이다. 선진국일수록 신문의 존재 가치를 중시하며 신문산업 발전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다.
한때 많은 기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적도 있었다. 그들이 써낸 책 ‘기자로 산다는 것’도 있다. 이 책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뜨거운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불의에 항거하며 정론에 핵심 가치를 두고 최후 생존의 보루인 밥그릇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진실에 호소했던 그들의 모습은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그렇다. 기자로 산다는 것, 그것은 곧 자기의 뼈를 깎는 인고의 싸움이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설렁설렁 취재해 기사를 쓴다면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낭패감만 들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기사의 특성상 팩트 위주의 관계를 다루기에 정서는 점점 메말라 가고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삶의 리듬 또한 엉망일 것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드러난 현상만을 좇지 않고 큰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예측해 그 길목에 서 있다가 월척(?)을 낚았을 때의 그 쾌감은 기자만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이리라. 또한 고정관념과 예단을 거부하고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는 동료를 만나 깊은 전우애(?)를 느낀다면 기자 직업으로서의 만족은 더 할 것이다.
이 말은 사회적 강자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 있게 정도(正道)를 걷고 있는 소수의 기자들에게만 국한되는 얘기다. 권력욕에 불타는 언론사일수록 현실을 오도하고, 논점을 전도하는 신문일수록 독자도 많고 영향력도 큰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그런 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이 말의 일부분은 될지언정 전부는 될 수 없다.
한 선배의 얘기가 생각난다. 그는 기자(記者)는 ‘말(言)이 곧 자기(己)’라고 했다. 즉 ‘기자 자신의 말이 곧 매체’라는 주장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진정 이 세상에 자유와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하는 기자(혹은 매체)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헛된 공명심에 사로잡혀 있거나 메이저 언론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안주하는 기자가 아닌, 진정성을 갖고 취재 수첩을 가슴에 품은 그런 기자 말이다.
굳이 언론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의 신문시장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나는 신문의 진정한 위기는 경영의 위기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사들은 편파성·정파성으로 인해 독자들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신문기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악조건에서도 눈물겹게 기자정신을 지켜내고 있는 동료들을 만나면 그저 가슴이 저린다. 하지만 맹수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다. 너무 가혹한 부탁일까. 그럼에도 그대들이 이 시대의 맹수로 남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