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김종 시인

2021년 04월 26일(월) 19:27

▲시 <옛집>은 화자가 예전 살던 집을 찾았고 “그립게 맞이하는 어머니 가슴 같은/ 그 옛날 전설”로 침묵하고 있는 빈집을 잔잔한 심정으로 토로하고 있다. 작품에서 우리는 은연중 ‘사람’과 ‘어둠’의 의미적 관계를 대비적으로 읽을 수 있다. 요컨대 부재한 것으로서의 ‘사람’과 실재한 것으로서의 ‘어둠’은 작은 촛불을 밝힐 ‘정다운 옛 추억’으로 자리한 것이다. 화자는 옛집에서 해바라기 베어낸 자리에 무성한 들풀을 보고 어머니가 쓰시던 녹슨 연장으로 땅을 갈아 밭을 일구고 씨 뿌리고파 했으나 사람은 없고 빈집만 낯익은 상황을 어둠의 허적함으로 되돌리는 작품이다.

▲시조 <화음방심>은 꽃이 핀 나무의 그늘에서 방심하고 지냈음을 반성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이 연상된다. 박정호 시인의 시적 언술은 한창 물이 올랐고 낭창거리는 표현을 타령조의 가락으로 풀어내고 있다. 옛시조가 창작현재성을 지니기까지 우선적으로 감안된 부분이 비좁은 그릇의 확장이었다. 그래서 연시조로의 변환을 꾀했고 시조의 체질을 지키면서 현대시와의 승산을 목표했던 것이다. 위의 작품은 사설시조이고 고향길을 따라가듯 자별한 내용에서 시인의 엔간한 입심으로 이 작품의 맛에 근접할 수 있었다.

▲시 <눈맛>은 항용 ‘입’으로만 감별하던 ‘맛’의 의미를 ‘눈’을 통해 인지한다. ‘감별’은 사물을 보고 식별하는 일이지만 ‘맛’의 의미는 혀를 댈 때에 느끼는 감각이며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기분이란 점에서 시각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느껴진다. 그런데 작품에서는 ‘감칠맛’을 예로 제시했고 눈을 통한 감별이라야 한다고 했다. 눈으로 보고 진짜 맛을 식별하는 것이라면 이는 일정 경지에 다다른 감별이 아니겠는가. 이길옥은 언어적 밀도가 짭짤한 시인이며 위의 작품에서도 혀가 아닌 눈으로 감별해야 진짜 ‘맛’이라는 인식을 가르치고 있다.

▲수필 <고추가 섰다>는 고추밭에서 고추 따기 작업을 하던 작가가 새삼스럽게 고추가 가을꽃이라는 생각을 하고 고추 생장의 모양새에서부터 뻘건 고추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어머니 이야기와 자신이 요량한 밥반찬으로서의 고추를 꺼내다가 조카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작가는 남편을 사별하고 궂은일도 마다 않고 돌고 도는 팽이처럼 억척스러운 조카의 삶을 통해 생의 의욕과 보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추는 현상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는 사물이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다소 해학적이면서 생의 견결함을 면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고추는 버릴 것이 하나 없는 반찬의 재료이고 이들 ‘고추’에서 ‘맵다’는 말을 유추해 생의 격려 또한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