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난장]80년 그해 오월, 기억해야 할 목소리 / 정서연
2021년 05월 02일(일) 19:46
정서연(푸르니보육지원재단 책임연구원)
“밤에 무서운 소리가 나서 엄마가 내 귀를 막았어.” , “집 앞에 탱크가 지나가서 쫓아갔어.”, “옥상에서 형과 놀고 있는데 헬리콥터에서 총을 쏴서 너무 놀랐어.” 좁고 구불구불한 데이지꽃 길을 걷다 보면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 5·18을 직접 보고 겪었던 아이들의 목소리다. 무시무시한 목격담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너무도 생생하다. 그 당시 아이들이 느꼈을 불안과 공포, 혼란 등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이 담겨있다.

1980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80명과 인터뷰를 했던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란 작품이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당시 역사의 증인으로 선택받지 못했던 아이들의 증언이 현재 광주에 사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녹음되어 꽃으로 피어났다. 국가 권력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평범한 아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통해 국가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억해야 할 의무감이 든다. 역사 앞에 고해성사를 하며 정화하고 치유하려는 그 목소리에, 우리는 분명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꽃길 끝자락에 놓인 의자 위 데이지꽃. 문선희 작가는 이 꽃을 선택했다. 옥스아이 데이지는 꽃과 잎, 뿌리까지 모두 상처 치료에 쓰인다. 80년 오월 당시 고문과 폭행을 당한 시민들을 치료하던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2021년 5월 다시 한번 치유와 회복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꽃길을 가득 메운 5천 개의 화분은 전시가 끝난 뒤 5천 명의 시민들에게 나눠준단다. 부디 많은 이들의 품 안에서 희망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길 소망해 본다.

데이지꽃 길 창문 너머로 어김없이 찾아온 봄, 벗겨진 페인트칠과 깨진 유리창 위로 켜켜이 쌓인 먼지를 보며 압축된 시간의 무게를 짐작해 본다. 과거부터 그곳에 서 있던 편백나무들은 신비롭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낯선 이방인들을 지켜본다. 80년 5월 역사의 현장을 또렷하게 지켜보았을 그 시선이, 지금의 우리도 기억해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것처럼 내 몸의 세포를 깨운다.

실과 성경 낱장으로 얼기설기 엮은 구조물이 공간에 스며들어 신성한 아우라를 자아내는 작품, 역사의 희생자들을 떠오르게 하는 천 개의 지팡이, 하얀 진흙과 폐자재를 이용해 축적된 시간 속에 묻혀있던 것들을 재현한 작품, 피를 뽑는 채혈줄 다발로 시대의 상흔을 드러낸 작품 등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공간을 지나며 마주하는 작품들이 매 순간 경이롭다. 폐허가 된 역사적 공간 속 작품들, 창문 너머의 푸르른 풍경들이 서로의 기억을 연결해 주는 느낌이다. 건물 외벽의 담쟁이 넝쿨과 따사로운 햇살이 공간과 공간 속 작품을 감싸주며 위로를 건넨다. 전시 관람 내내 반전의 연속이면서 연결의 미학도 기발하다.

1980년 오월의 역사적 공간인 ‘옛 국군광주병원’. 광주의 아픈 기억을 품은 이곳에서 마지막 전시가 더욱 특별한 이유이다.

광주의 역사를 품고 있는 특정 장소와 작품을 하나로 엮은 ‘광주비엔날레 커미션’과 5·18 40주년 특별전시 ‘메이투데이’(Maytoday)에서 마주한 작품들은 질곡의 역사와 현재를 관통하는 슬픔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현재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민주화 운동의 상흔를 바라보고 말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숭고하다.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아프고 힘들지만, 우린 분명 어둠을 지나 빛을 찾아가고 있기에 희망을 품어본다. 옛 국군병원에 머물렀던 존재들의 시선과 목소리, 80년 그해 오월 아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기억해야 할 목소리다.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www.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jdaily.com/1619952415544773131
프린트 시간 : 2024년 07월 17일 0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