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난장]뮤지컬 ‘광주’를 보고나서 / 이현
2021년 05월 20일(목) 19:31
이현 아동문학가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나의 기억 속 동요 ‘섬집아기’는 엄마다. 어린 나를 등에 업고 자장자장, 자장가를 불러주던 엄마의 목소리다. 토닥토닥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다.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그리움이다. 편안함이다. 생각만으로도 울컥해지는 눈물이다. 또 다시 일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이다. 오월이면 더욱 그리운 애틋함이다. 오월이면 더욱더 아파오는 기억도 있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부끄러움이다.

“비상계엄 즉각 해제하라! 해제하라!”

41년 전, 광주의 오월은 뜨거웠다. 모두가 하나 되어 뜨겁게 외쳤지만, 시위는 평화로웠다. 시민군은 순찰을 돌며 시민 보호와 질서유지를 위해 애썼고, 시민들은 물과 주먹밥을 만들어 나눴다. 고립된 상황에서도 누구하나 사재기를 하지 않았고, 약탈도 강도도 없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투입되기 시작했지만 현실로 다가오진 않았다. “탕! 탕탕!” 밤새 들리는 총소리에 겁도 나고 무서웠지만, 대한민국을 믿었다.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 두꺼운 솜이불로 창문을 막으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면서도 설마 했었다. 우리의 외침은 대한민국 민주시민으로써의 권리를 외친 것 뿐 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 순간, 지극히 평범한 광주의 시민들이 다치고 죽어갔다. 시민들에게 발포가 시작되었다는 말에도 설마 하는 사이, 시민들은 군홧발에 짓밟히며 줄줄이 연행되었다. 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막다른 골목에서, 트럭에서, 피 흘리며 죽어갔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하고도 잔인한 오월의 광주였다.

겨우 몇 번, 주먹 쥔 손을 흔들며 구호를 외친 게 전부였지만 무섭고 두려웠다. 무섭고 두려운 만큼, 목청껏 구호를 외치며 행군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가슴 한 편에 누군가 나를 만류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아버지의 강압적 통제가 시작되었고 나는 슬며시 손을 놓았다. 아버지의 감금을 핑계로 뒤돌아 선 용기 없고 부끄러운 시민이었다.

“걸어갈까?” 간편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빛고을시민문화관까지의 거리가 꽤 되는 만큼, 평상시엔 차를 이용했지만 걷기로 했다. 한달음에 성큼, 오월의 광주로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싶었다.

막이 오르고 시작된 뮤지컬 ‘광주’는 과장되지 않아 좋았다. 그때 그 시절을 사실적으로 토해내며 어느 순간, 나를 데려가 주었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로 돌아가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목안이 울컥거렸다. 참으로 오랜 만에 뜨거운 가슴이 되어 노래하며 외쳤다. 그동안 내내 미안했다고, 그동안 내내 부끄러웠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용기 내어 민낯으로 말 할 수 있어 고마웠다. 이제는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었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광주’는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뮤지컬 형식을 통해 80년 5월의 광주를 대중화, 세계화 시키려는 취지에서 제작된, 배우와 관객이 하나 되는 아픔과 위로의 시간이었다.

“우리들의 사랑, 명예, 이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뮤지컬 ‘광주’의 울림이 세대와 시대를 넘어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광주의 오월이 아닌 우리 모두의 오월이 되어 힘차게 나아가는 희망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진실을 진실로 알고/ 진실 되게 행하는 자/진실 속에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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