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 유생 김득환의 신 시묘살이 / 김선기 |
| 2021년 05월 24일(월)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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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의 본격적인 시묘살이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는 부모님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소관재(素冠齋)’란 현판을 달았다. ‘죽을 때까지 흰 의관을 쓰고 부모님의 묘소를 지킨다’는 자신과의 약속에서다. 그리고 그 옆에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사은정(思恩亭)’을 건립, 상매연(賞梅宴)과 철 따라 시회(詩會)를 열어 사라져가는 선비문화를 계승·보존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시묘살이는 우리 전통문화인 상례의 하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이 탈상할 때까지 3년 동안 묘소 근처에 움집을 짓고 지내면서 묘를 돌보며 제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3년’ 이라는 기간은 혼자 먹고 활동할 수 없는 유아기 동안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최소의 시간이다.
전통적 시묘살이는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불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 3년 동안 수염과 머리카락도 깎지 않았다. ‘고려사’와 ‘삼강행실도’에 전해오는 고려시대의 소문난 효자 최루백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21세기에 사는 김득환과 고려시대에 살았던 최루백의 시묘살이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그가 생각해낸 게 주말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금요일 퇴근하여 움막에 들어와서 일요일 오후 귀가하는 방식의 이른바 ‘주말 시묘살이’다. 물론 두 사람의 시묘살이 방식은 다르지만, 그 심연에 흐르는 성정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다. 효는 인간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자 가치요,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리라.
가정은 우리네 삶의 첫 번째 기본단위라 할 원초(原初)집단이자 인간 모두의 소중한 안식처다. 그래서 국가는 매년 5월을 ‘가정의 달’로 지정해 가족 구성원 간 관계를 다지고 소중함도 일깨우자는 의미의 다양한 축제를 펼치는 이유다.
한데 올 가정의 달은 귀를 의심할 정도로 끔찍한 소식들만 들렸다. 자식이 부모를 토막 살해하고, 이혼소송을 제기한 아내를 남편이 칼로 찔러 죽이고, 눈 만 뜨면 벌어지는 아동학대 사건 등이 그것이다. 어쩌다 이 사회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이렇듯 인륜의 근본이 흔들리는데‘가정의 달’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왜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감마저 든다.
가정은 법이나 제도로 구성된 것이 아닌, 오직 인륜이라는 천부적 조건에 의해 구성된 자연집단이기 때문에 여기엔 가정의 덕목만이 존재할 뿐이다. 부부간, 부모-자식간 모두 천부적인 인륜에 의해 엮어진 혈연관계는 멋대로 맺고 끊는 관계가 아닌 하나의 숙명적인 인연이다. 여기엔 돈도 명예도 가당치 않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가정의 울타리는 결코 깨지 않는 인간의 기본가치를 회복시키고, 인간성 회복 운동을 펴야 할 때다. 강진 유생 김득환 선생의 신 시묘살이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그의 모습이 더욱 빛나는 까닭이다.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랑이 있다. 그중에서 이 세상의 근원을 세우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의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은 이 사회를 지켜내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신축년 5월 가정의 달이 지고 있다. 5월이 가기 전에 아버지 묘소를 찾아 술 한 잔 올려야겠다. 아버지에게 가는 산길엔 어김없이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것이다. 몹시 주말이 기다려진다.